伊대통령, 무정부상태 타개 위해 '한시적 중립 정부' 제안(종합2보)

입력 2018-05-08 03:36  

伊대통령, 무정부상태 타개 위해 '한시적 중립 정부' 제안(종합2보)
대통령-각 정파 최종 면담도 결렬…오성운동·동맹은 "7월8일 재투표해야"
민주당 "대통령 제안 지지"…베를루스코니 "재총선 시기, 가을이 더 바람직"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에서 지난 3월 4일 총선 이후 각 정당 간 연정 협상이 교착에 빠지며 2개월 넘게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총리 지명권과 의회 해산권을 쥔 이탈리아 대통령이 한시적 중립 정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은 7일 대통령궁으로 각 정당 대표들을 불러들여 3차 면담을 한 이후에도 연정 구성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자 "(극우정당)동맹과 (반체제 정당)오성운동, 오성운동과 (중도좌파)민주당, 우파연합과 민주당 간의 연정 모두 실현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 같은 방안을 제안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국내외의 엄중한 상황을 감안할 때 이탈리아는 더 이상 리더십 공백을 감내할 수 없다며 "이제 각 정파는 올해 말까지 통치할 중립적인 정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중립적인 정부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경제학자인 마리오 몬티 전 총리가 이끈 정부처럼 비정치인 출신의 전문 관료에게 총리를 맡기고, 각 정파가 모두 참여하는 거국 내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각 정당들의 연정 구성에 합의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런 한시적 중립 정부에 선거법과 내년 예산안 등 급한 현안을 처리하게 한 뒤 내년 초에 선거를 치르는 방안을 고려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중립 정부를 이끌 인사들로 누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거명하지 않았으나, 중립 정부의 지도자들은 내년 선거에 출마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하지만, 이 같은 거국 중립 내각 구성에 이번 총선에서 남부의 몰표에 힘입어 이탈리아 최대 정당으로 떠오른 오성운동과 반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눈에 띄게 약진한 극우정당 동맹이 분명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라, 대통령이 지목하는 총리 후보가 의회의 신임 투표를 통과할지 여부는 극히 불투명한 것으로 관측된다.
오성운동과 동맹 대표는 이날 마타렐라 대통령과의 면담을 각각 마친 뒤 "각 정당 간 정부 구성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오는 7월 8일 총선을 다시 치러야 한다"고 나란히 주장하고 나섬에 따라 정가에는 이미 7월 재총선 가능성이 유력하게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의 중립 내각 제안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주요 정당은 현재까지 민주당이 유일하다.
우파연합의 일원인 전진이탈리아(FI)의 당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여름철에 재투표를 실시하면 투표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올 가을 총선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자신이 제안한 중립 내각이 의회의 신임투표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연내 재투표가 불가피할 것이라면서도 올해 안에 총선을 다시 치를 경우 이탈리아는 과도한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며 "각 정파들이 이탈리아의 이익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거국 중립 내각에)긍정적인 응답을 해줄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연내 재총선을 꺼리는 것에는 이탈리아 역사상 총선 이후 어떤 형태로라도 정부가 구성되지 않아 총선 자체가 무위로 돌아간 적이 한 번도 없는데다, 휴가철이 임박한 여름에 총선을 실시할 경우 유권자들의 투표 기회를 제한할 위험 부담이 존재하고, 현행 선거법 아래에서 재총선을 치르더라도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정당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재총선을 치른 뒤 정부가 구성될 경우 물리적으로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킬 시간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마타렐라 대통령은 각 정당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며 정부 출범이 지연되자 이날 각 정파 대표들을 대통령궁으로 불러 모아 정부 출범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사실상 최종 면담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정부 구성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여온 오성운동과 동맹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거취를 둘러싼 여전한 의견차를 노출했고, 이에 따라 마타렐라 대통령은 정당 간 합의에 의한 정부 구성에 대한 기대감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앞서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는 이날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총선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우파연합 내에서도 동맹이 최다 득표를 한 만큼, 자신에게 정부 구성 권한을 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군소 정당과 무소속 의원들을 개별 접촉해 과반 의석을 확보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파연합의 의석이 현재 하원(총 630석)의 과반에서 약 50석, 상원(총 315석)은 20석이나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살비니 대표에게 정부 구성 권한을 주더라도 정부 출범을 장담할 수 없어서다.
이밖에,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는 총리는 반드시 자신이 맡아야 한다는 지금까지의 완강한 입장에서 물러나 "동맹과의 합의 하에 누가 총리가 될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한발 양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동맹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와 결별해야 한다는 연대의 전제 조건을 끝까지 고수함에 따라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대는 끝내 불발됐다.



오성운동은 "'부패의 대명사'인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연정에 참여할 경우 이탈리아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며 동맹에 베를루스코니와의 결별을 거듭 압박해 왔으나, 동맹은 공동으로 선거에 임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은 우파연합을 깰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해 양측의 결합은 결국 현실화되지 못했다.



지난 3월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살비니 대표의 동맹,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 등 우파 정당 4곳이 손을 잡은 우파연합이 37%의 득표율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오성운동은 남부의 몰표에 편승해 약 32%의 표를 얻어 단일 정당 가운데 최대 정당으로 떠오른 바 있다.
우파연합 가운데에서는 동맹이 18%를 득표, 14%에 그친 FI를 제치는 파란을 일으키며 우파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자리바꿈을 했다.
반면, 지난 5년 간 집권 정당인 중도좌파 민주당은 19%의 득표율로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뒤 어떤 세력과도 연합하지 않은 채 야당으로 남겠다는 뜻을 일찌감치 천명했다.
이런 가운데 이탈리아 통계청은 정부 구성 지연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유럽연합(EU) 경제 규모 3위인 이탈리아의 경제성장 전망도 약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이날 경고했다.
대외적으로도 다음 달 역내 난민 정책, EU 개혁, 예산 지침 등을 논의할 EU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어, 이때까지 무정부 상태가 이어질 경우 이탈리아의 국익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12월 취임한 파올로 젠틸로니 총리가 새 정부 구성 때까지 임시로 정부를 이끌어 가고 있지만, 실권이 실리지 않은 만큼 이탈리아의 협상력이나 발언권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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