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정당들, 연정구성 결렬에 '네 탓' 공방

입력 2018-05-08 22:21   수정 2018-05-09 16:36

이탈리아 정당들, 연정구성 결렬에 '네 탓' 공방
중도내각 제안한 마타렐라 대통령, 女총리 임명 가능성 대두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총선 2개월이 지나도록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각 정당들이 연정 구성을 위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며 재투표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주요 정당 대표들이 연정 불발의 책임을 상대에게 미루며 비난전에 나섰다.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는 8일(현지시간) 현지 라디오 RTL 102.5와의 회견에서 이탈리아가 결국 연내 재투표를 하게 된다면, 이는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와의 결별을 거부한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전날 각 정당 대표들과의 면담에서도 정부 출범의 돌파구가 마련될 기미가 감지되지 않자 중립적 인물을 총리로 내세운 중도 내각을 구성해 연말까지 내년 예산안, 선거법 개정 등 시급한 현안을 처리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오성운동과 동맹은 이를 즉각 일축하며 오는 7월 8일 재총선 실시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디 마이오 대표는 이날 라디오에 "내가 살비니에게 요구한 유일한 사항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버리라는 것이었지만, 그는 베를루스코니와 붙어 있는 쪽을 선택했다"며 "살비니는 역사와 이탈리아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다시 투표를 해야 한다면, 이는 그가 혁명 대신 (낡은 제도로의)회귀를 택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총선에서 기성정당에 대한 반감과 반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나란히 약진한 반체제 정당인 오성운동과 극우정당인 동맹은 서로 손잡고 연정을 구성할 것으로 점쳐졌으나, 두 정당의 결합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라는 걸림돌에 가로 막혀 결국 무산됐다.
오성운동은 "'부패의 대명사'인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연정에 참여할 경우 이탈리아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며 동맹에 베를루스코니와 결별한 뒤 오성운동과 동맹 만으로 이뤄진 연립정부 구성을 거듭 압박해 왔으나, 동맹은 공동으로 선거에 임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은 우파연합을 깰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오성운동은 이번 총선에서 32%를 득표해 창당 9년 만에 단일 정당으로는 최대 정당으로 발돋움했으나, 동맹과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 등 우파 정당 4곳이 손을 잡고 선거에 임한 우파연합은 오성운동보다 더 많은 37%의 표를 얻어 최대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 했다.



살비니 대표는 정부 구성 무산의 책임은 오성운동 때문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오성운동이 지난 5년 간의 집권 세력인 중도좌파 민주당과의 연정 가능성도 타진한 것을 지칭하며 "오성운동은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하며 흔들렸다"며 "재총선은 동맹이냐 오성운동이냐를 선택하는 국민투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재선거로 가는 것을 피하려면 오성운동이 우리에게 우파연합의 파트너인 베를루스코니를 버리라는 요구를 철회하든지, 아니면 베를루스코니가 한옆으로 물러나든지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마라렐라 대통령이 제안한 중도 내각에 찬성 의견을 밝힌 정당은 민주당이 현재까지 유일한 터라, 중도 내각을 이끌 총리가 지명되더라도 의회의 신임투표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마타렐라 대통령은 일단 이르면 오는 9일 총리를 지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 등 이탈리아 주요 언론은 파올로 젠틸로니 총리가 외무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수석보좌관을 지낸 엘리사베타 벨로니(59) 외무부 사무총장, 마르타 카르타비아(54) 헌법재판소 부소장 등 여성 관료들이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만약, 총리 지명자가 의회의 신임 투표를 통과하지 못하면 마타렐라 대통령은 지난 3월 총선으로 구성된 의회를 해산하고, 이탈리아는 재총선 수순을 밟게 된다.
선거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할 때 투표는 의회가 해산된 뒤 최소 60일은 지난 뒤 이뤄져야 해 아무리 빨라도 7월 하순이나 돼야 재선거가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재투표를 하더라도 현행 선거법 아래에서는 과반 정당이 나올 가능성이 낮아 이탈리아의 정치 불확실성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이런 우려가 반영돼 이날 밀라노 증시는 오전 현재 2.2% 급락하고, 이탈리아와 독일 국채 10년물 스프레드(금리차)는 130bp를 넘어서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이런 가운데, 7일 공개된 여론조사 기관 SWG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총선 당시에 비해 지지율이 가장 많이 상승한 정당은 극우정당 동맹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맹은 3월 총선 당시 17.4%였던 지지율이 24.4%까지 치솟았다.
반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FI는 동맹에 지지세를 빼앗기며 지지율이 14%에서 9.4%로 급락했다. 오성운동은 32.7%에서 32.3%로 소폭 빠졌고, 민주당은 18.7%에서 19%로 약간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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