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이란 제재 부활 전 90·180일 유예 기간 둬
이란도 즉각 핵활동 재개 2∼3개월 미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대체적인 예상대로 8일(현지시간) 대이란 제재를 2016년 1월 핵합의 이행 이전으로 완전히 복원했다.
그간 그의 언사를 고려했을 때 제재를 부활하고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할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렸던 터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애초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수권법의 제재 연장 시한인 5월12일자로 제재를 되살릴 것으로 예측했지만, 분야에 따라 90일과 180일의 두 가지 유예 기간(wind-down period)을 두면서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 기간이 이란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이 매출 채권 회수, 계약 미이행 분쟁 해결 등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문자 그대로 이란 내 사업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5월8일부터 기산해 이르면 90일째 되는 8월6일까지 청산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이런 내용의 대이란 제재 부활과 관련한 OFAC의 구체적인 일문일답이 공개되자 뜻하지 않는 90일이라는 시간이 주목받게 됐다.
핵합의의 직접 당사국이자 서명국인 미국과 유럽 3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이란이 외교적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섞인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란 정부도 미국이 제재를 재부과하면 이틀 안으로 농도 20%를 목표로 우라늄을 농축하겠다는 이전 경고와 다르게 비슷한 기간으로 말미를 뒀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8일 "미국이 핵합의에서 탈퇴해도 이에 남겠다"면서 "우리는 두세 달은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리 라리자니 이란 의회 의장도 9일 "이란이 핵합의에 머무는 몇 주간 유럽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란 정책의 결정자인 아아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역시 이날 이란의 즉각적인 핵활동 재개를 지시하는 대신 유럽이 미국과 달리 핵합의를 지키겠다는 점을 실질적이고 확실히 보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이 핵합의의 분쟁조정 조항에 따라 서명국이 모이는 공동위원회에 미국의 위반 문제를 회부하면 최장 65일의 논의 기간이 생긴다.
낙관적으로 보자면 미국과 이란 양측 모두 적대적 조치를 일단 미룬 덕분에 불확실하고 어정쩡하지만 극적으로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최장 90일이라는 시간을 벌게 된 셈이다.
컨설팅 기업 컨트롤리스크는 9일 낸 보고서에서 "미국이 정한 90일, 180일 시한으로 미국을 제외한 핵합의 서명국이 새로운 합의안을 도출하거나 자국 기업을 미국의 제재에서 보호하는 방법을 고안할 수 있는 기간이 생겨났다"고 분석했다.
현재로선 이 기간 미국과 이란이 전격 합의하기에는 간극이 너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정부의 합의를 무시하고 재협상을 통해 자신이 만든 새로운 합의을 원하지만 이란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다자간 합의한 원문 그대로를 고수한다.
힘에 기반을 둔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하는 전문가들은 이 90일이 이란이 인내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예상한다.
미국이 90일 뒤 대이란 제재를 실제로 부과하기 시작하면 이란도 경고한 대로 핵활동을 재개하면서 역사적인 핵합의는 결국 파기되고 이란 핵위기가 다시 중동의 최대 현안이 된다는 것이다.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부활을 발표한 직후 핵합의를 '살짝' 벗어나는 핵활동을 예고해 긴장을 높였다.
로하니 대통령은 8일 밤 대국민 긴급 연설에서 "원자력청에 산업적 수준의 우라늄 농축을 어떠한 제한없이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산업적 수준의 우라늄 농축은 원자력발전소용 핵연료봉에 쓸 수 있을 정도로 농도를 높이는 작업이다. 통상 4∼5%를 이르는 데 이는 핵합의에서 정한 농축 한도(3.67%)를 약간 웃돈다.
또 이란은 이 농도의 우라늄을 300㎏까지만 보유할 수 있지만, 로하니 대통령은 그 양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했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가 돌아가는 시점은 미국이 제재를 재부과하는 90일 뒤 8월6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