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수필 '만주와 한국 여행기'·구로카와 소 소설 '암살'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마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유명한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 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와 독립운동가 안중근(1879∼1910)이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까. 언뜻 이어지지 않는 두 인물은 무엇보다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웃한 다른 나라에 태어나면서 완전히 다른 운명을 걷게 된다.
두 사람의 운명이 엇갈린 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본 서적 두 권이 나란히 번역 출간됐다. 나쓰메 소세키가 쓴 수필 '만주와 한국 여행기'(소명출판)와 일본 작가 구로카와 소의 소설 '암살'. 두 책 모두 김유영 동덕여대 일본어학과 조교수가 번역했다.
'만주와 한국 여행기'는 한국에 나쓰메 소세키 전집 일부로 소개된 적이 있지만, 단행본으로 나오기는 처음이다.
이 책은 작가가 1909년 9월 2일부터 10월 14일까지 42일간 만주를 여행하고 돌아와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기행문이다. 원래 한국 여행기도 넣을 예정이었지만, 여행기는 만주 이야기에서 중단된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인 나카무라 요시코토가 총재로 부임한 만주철도 측 초대로 만주에 가게 된다.
그리고 이 여행기에서 작가는 많은 독자에게 알려진 '대문호'와는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해안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그렇지만 그 대부분은 중국의 쿨리(육체노동에 종사하는 하층의 중국인·인도인 노동자)들로, 한 사람도 더러운데 둘 이상 모이니 더욱더 볼꼴사나웠으며, 이렇게나 많이 뭉쳐있으니 더더욱 거북스럽기 그지없다. (중략) 인력거도 많이 있었지만 인력거는 어차피 모두 저 소란스런 패거리들이 끄는 것으로, 내지(일본 본토)와 비교해 보자면 느낌이 매우 좋지 않았다." (24∼25쪽)
"인력거꾼이 중국인 혹은 조선인인 경우에는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어차피 남이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인력거를 끄는 방식에는 조금도 인력거에 대한 존경심이 나타나 있지 않다. (중략) 끝내 조선인의 머리를 한 대 내려치고 싶을 정도로 험한 취급을 당했다. (중략) 그 인력거를 끄는 방법이 너무나도 형편없어서, 단지 무턱대고 뛰어대기만 하면 인력거꾼의 본분을 다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이 완전히 조선식이었다." (155쪽)
김유영 번역가는 1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대외적으로 반전주의자 모습을 보였고 일본의 천황제와 전쟁에 부정적이며 식민지 사람들에게 연민을 갖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이 만주 여행기를 보면 일본인들은 자랑스럽고 영국인들은 당당하고 러시아인의 건축물은 훌륭했다고 하면서도 식민통치 하에 고통을 겪는 피식민지 하층 계급에는 불쾌하다, 더럽다는 표현을 쓴다"며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기존에 알려진 모습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후 '만주일일신문'에 기고한 '한만소감(韓滿所感)-하'란 제목의 글에서도 이중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지난 여행 때 한 가지 느낀 점은, 내가 일본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자각할 수 있었던 점이다. 내지에서 두려워 떨고 있을 때에는 일본인 만큼 불쌍한 국민은 세상에 절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종 압박에 시달렸는데, 만주와 조선에 건너온 나의 동포가 문명 사업의 각 방면에서 활약하여 매우 우월한 존재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일본인도 매우 믿음직한 인종이라는 인상이 머릿속 깊이 각인되었다. 동시에 나는 중국인이나 조선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눈앞에 두고 승자의 패기를 지니고 자신의 일에 종사하고 있는 나의 동포들이야말로 진정한 운명의 총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암살' 218쪽)
이 글은 '암살'의 작가인 구로카와 소가 2010년 봄 전남대에서 열린 '광주민중항쟁 30주년 국제 심포지움'에 초청돼 참석했다가 안중근 관련 자료집에서 나쓰메 소세키가 쓴 '한만소감-상'을 발견하고는 놀라 '한만소감-하'까지 찾아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한만소감-상'에는 "어젯밤 오래간만에 잠시 짬을 내어 '만주일일신문'에 무언가 소식을 쓰려고 생각하여 붓을 들어 두 서너 행을 쓰려고 하던 차에 이토 공이 저격당했다는 호외가 들려왔다. 하얼빈은 내가 얼마 전에 둘러봤던 곳으로, 이토 공이 저격당했다고 하는 플랫폼은 지금부터 1개월 전에 내가 두 발로 디뎠던 곳이었기 때문에, 드문 변고였기도 했지만, 장소로부터 연상되는 자극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것은 1909년 10월 26일. 나쓰메 소세키와 안중근은 한 달 간격으로 하얼빈역을 다녀간 것이다.
일본 작가 구로카와 소는 이 사실에 흥미를 느끼고 나쓰메 소세키 같은 당시 일본의 엘리트 계급과 그 반대편에서 안중근과 비슷하게 반전운동, 천황 암살을 모의한 사회주의자 그룹을 조사한다. 이 내용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책이 '암살'이다. 저자는 이토 히로부미 역시 한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정적을 암살하는 등 급진적인 행동을 한 테러리스트였다고 지적한다.
김유영 번역가는 "안중근을 일본 정부 입장에선 테러리스트라고 하지만, 일본의 애국자로 볼 수 있는 이토 히로부미도 비슷한 행위를 했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암살당한 것에 큰 불만이 없을 거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그 시대에 테러란, 암살이란 무엇인지 다각도에서 보아야 하고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이 의미가 있다고 봐 한국에 소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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