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호메로시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독성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위스 의학자 파라켈수스는 500년 전 "용량이 독을 만든다"고 가르쳤다.
여기에는 생리현상과 자연, 삶에 대한 뛰어난 통찰이 담겼다.
우리는 흔히 좋은 것을 최대한 많이 취하고 나쁜 것은 가능한 멀리하는 게 건강과 행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좋고 나쁜 것은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만사는 '용량',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신간 '호메로시스'(갈매나무 펴냄)는 약(藥)이 독(毒)이 되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약리학 혹은 독성학에서 비롯된 생각을, 자연 메커니즘과 인간의 삶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원리로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철학적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저자는 독일 진화생물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리하르트 프리베다.
호르메시스(hormesis)는 원래 '자극'이란 뜻의 그리스 말로, 미량의 독소나 유해물질, 과도하지 않은 스트레스가 오히려 생물의 생장에 도움을 주는 보편적인 생리현상을 가리킨다. '적응적 스트레스 반응'이라고도 하는데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유독하지만, 용량을 줄이면 유익하게 작용하는 물질은 수없이 많다. 마늘의 알리신, 양배추의 설포라판, 카레의 커큐민, 블루베리나 카카오 등의 열매에 함유된 폴리페놀과 플라보놀, 당뇨병 치료제로 알려진 메트포르민, 탈모 치료제로 쓰이는 미녹시딜 등등.
이런 작용의 비밀은 해당 물질에 있지 않고 이에 반응하는 몸에 있다. 세포는 적절한 스트레스를 견디고 방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미래의 더 강한 스트레스에 대비하고 이미 쌓인 손상까지 복구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이는 진화의 유산이다. 인간과 동물은 오랜 세월 먹이가 부족하고 독성물질이 가득한 척박한 환경을 견디고 적응함으로써 현재에 이르렀다.
어쩌면 인체 메커니즘은 현대 문명이 제공하는 안락함보다는 어느 정도의 허기와 결핍, 고생스러움, 정신적 스트레스에 최적화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조상들에겐 꿈에 그리던 이상향이었을, 배도 부르고 몸도 편한 '카우치 포테이토'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수명을 단축하는 원인이라는 사실이 대단한 역설이라고 지적한다.
신체에 자극을 주는 모든 물질과 활동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스트레스는 양면적이다.
건강에 나쁘다는 방사선, 음주, 흡연은 물론 건강에 좋다는 운동, 사우나도 사실은 일종의 스트레스 자극이다.
흔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운동을 한다지만, 사실은 새로운 자극으로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만들어냄으로써 몸에 내재한, 스트레스의 치유·회복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스트레스 작용을 건강과 장수, 행복의 핵심으로 본다.
오래 건강하게 살기 위해선 적절한 육체적·정신적 자극을 통해 세포들에 아직 영면에 들어갈 때가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당뇨병이나 자가면역질환처럼 문명과 함께 생겨난 질병들은, 오늘날 인류에게 중요한 것이 스트레스의 회피가 스트레스 자극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심지어 우리가 순전히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떠난다고 믿는 휴가조차 이런저런 스트레스들로 가득한데, 일상의 불쾌한 스트레스와는 달리 좋은 느낌을 주는 전달물질과 호르몬을 생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기존 상식을 뒤집는 이 같은 생각의 변화를 의학과 생명과학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이라고 말한다.
이는 종교적인 절대적 선악 개념과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이분법적 사고를 흔드는 발상의 전환이다.
"호르메시스는 선물이다.… 우리는 이런 진화의 선물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담배 연기 자욱한 곳에 잠시 체류하게 되었다고 신경이 지나치게 예민해질 필요는 없으며 할아버지 집 지하실의 라돈이나 이웃집의 오래된 석면 슬레이트 지붕에도 그렇게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몸속 활성산소에 대해서도 너무 찝찝해할 필요는 없다. 이런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면 여간 해방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닐 테니 파라켈수스적 전환은 일단 개개인으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유영미 옮김. 344쪽. 1만7천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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