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본고장 이탈리아에 또 다른 한인 프리마돈나 탄생

입력 2018-05-13 07:00  

오페라 본고장 이탈리아에 또 다른 한인 프리마돈나 탄생
이실비아 씨, 로마 오페라 극장 제작 '돈조반니'에서 주역 꿰차
"노래로 나누는 삶 꿈꿔…유럽 오페라 무대 꾸준히 설 것"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소프라노 조수미 등이 활약하고 있는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 또 한 명의 한인 프리마돈나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12일 로마 중심가 테아트로 나치오날레 극장에서 폐막한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주역으로 호평받은 소프라노 이 실비아(32) 씨.
이 씨는 힘있는 목소리와 매력적인 연기로 극중 가장 입체적인 인물로 꼽히는 돈나 엘비라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객석으로부터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1주일 동안 관객과 만난 이번 무대는 로마뿐 아니라 이탈리아 전체에서도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로마 오페라극장의 '젊은 예술가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로마 오페라극장은 차세대 성악 기대주 발굴을 위해 이 프로그램을 시작, 2015년부터 촉망받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무대에 오를 기회를 주고 있다.
로마 오페라극장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를 향유할 수 있도록 트럭을 세트로 삼아 관객들을 직접 찾아가는 '오페라 카미온(트럭)'으로 이 작품을 기획, 작년 7∼8월 지진 피해 지역인 아마트리체 등 라치오 지역 8개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을 펼쳤다.
현란한 영상 매체를 활용해 모차르트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돈 조반니'가 젊은 성악가들의 열정과 어우러져 기대 이상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자 로마 오페라극장은 올 시즌에는 이 작품을 정식 무대에 올렸다.



이 씨는 작년 1월 치열한 오디션 경쟁을 거쳐 당당히 작품 속 여자 주인공 중 1명인 돈나 엘비라 역할을 꿰찼다.
세비야의 소문난 바람둥이 기사인 돈 조반니에게 버림받은 후 복수를 위해 그를 찾아 헤매는 돈나 엘비라는 돈 조반니에 대한 분노와 사랑, 상심 등 복잡한 감정을 연기와 노래로 그려내야 해 표현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배역으로 꼽힌다.
최근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 만난 이 씨는 "오디션 때는 원래 다른 배역으로 지원하려 했는데, 제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강한 철심 같은 느낌이 엘비라의 성격과 잘 맞는다며 연출가가 이 역할을 권해줬다"며 "결과적으로 반응이 좋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2013년 이탈리아로 건너 와 로마 남부 프로시노네 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학창 시절부터 노래뿐 아니라 연기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특히 오페라 무대에 강점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동양인들은 대개 노래는 잘하지만, 연기나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않아 오페라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그는 자연스러운 연기와 색깔 있는 목소리를 내세워 다양한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덕분에 그는 2016년 7월 시칠리아 섬 타오르미나의 원형극장에서 열린 타오르미나 오페라 페스티벌의 개막작 '나비부인'의 조역을 시작으로, 작년 1월에는 토스카나주의 루카, 피사 등에서 공연된 '마술피리'의 조연을 거쳐 '돈 조반니'로는 주역까지 맡으며 콧대 높은 오페라 종주국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릴 채비를 마쳤다.
그는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는 것과 연기하는 것을 좋아했다"며 "오디션에서는 '이 가수가 특정 배역에 얼마나 적합한가'를 보기 때문에 특별히 동양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느낌은 못받았다. 오디션을 앞두고 캐릭터를 충실해 분석해 준비하면, 운 좋게도 작품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내달 말에는 토스카나주 키안니에서 열리는 오페라 축제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 주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12월에는 시칠리아 트라파니에서 공연하는 등 꾸준히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어준 '열매 실, 왕비 비, 아름다울 아'로 구성된 실비아라는 이름이 오페라 무대에 오르는 운명을 예비했다고 믿고 있는 그는 "오디션에 참가해 배역을 따내고,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게 재밌고, 즐겁다. 기회가 주어지면 이탈리아뿐 아니라, 독일 등 다른 유럽 무대에도 서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아버지인 바이올리니스트 이 활 씨의 독일 유학 시절에 독일에서 출생해 5세까지 그곳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는 "현재가 쌓여 미래가 되는 만큼 항상 주어진 현재에 감사하며, 성실히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노래든, 물질이든 제가 가진 것들을 주변과 나누면서 사는 게 삶의 목표"라고 눈빛을 반짝였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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