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곳곳에 미국 국기…팔레스타인인들은 비판 목소리
14일 개관식 앞두고 충돌 우려…가자지구 병력 배로 늘려
(예루살렘=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도시인 예루살렘에서는 12일(현지시간) 오후 미국대사관 개관을 불과 이틀 앞두고 긴장감이 흘렀다.
예루살렘은 휴일인 토요일을 맞아 시내가 비교적 한산한 가운데 오는 14일 미국대사관으로 변신할 아르노나(Arnona) 지역의 미국영사관 주변에서는 기쁨과 우려가 묘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동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에서 차를 15분 가량 타고 예루살렘 남부 고지대에 있는 미국영사관 건물을 찾았을 때 예루살렘 시민 10여명이 눈에 띄었다.
시민들은 미국영사관 정문을 배경으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며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은 '미국대사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역사적이고 중요한 결정이다", "매우 긍정적이다", "예루살렘은 원래부터 이스라엘의 수도"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한 40대 남성은 '미국대사관'이라는 문구가 적힌 안내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이 이스라엘에 힘을 줄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예루살렘 미국대사관의 오픈 준비는 사실상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다.
건물 정문은 굳게 닫힌 채 사람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찾을 수 없었고 영사관 대지에 설치된 대형천막 안에는 개관식을 위한 의자 수백 개가 놓여있었다.
또 도로 곳곳에서는 이스라엘 국기와 미국 국기가 나란히 펄럭였다.
개관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등 8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대사관 이전식을 앞두고 긴장감이 커지고 있음이 확연하게 감지됐다.
미국영사관 건물 주변에는 경비원 5∼6명이 배치돼 외신기자와 시민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감시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한 경비원은 기자에게 "내일 저녁부터는 영사관 주변 도로가 완전히 차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칫 미국대사관을 둘러싼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경계를 대폭 강화한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미국대사관 이전을 비판하는 팔레스타인인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아르노나의 한 공원에서 만난 팔레스타인인 마함마드 아샵(81)은 "미국대사관 이전은 몹시 나쁜 선택"이라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이 이스라엘의 힘보다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팔레스타인인 알라(55)씨는 "미국대사관 이전은 잘못됐다"며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렇게 함부로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은 미국대사관 개관식 당일을 '분노의 날'로 선언하고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가자지구 등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군의 충돌로 유혈사태가 커질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가자지구에서는 지난 3월 말부터 반(反) 이스라엘 시위가 계속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주변에 보병 여단 3개 대대를 추가 배치하는 등 병력 수를 배로 늘리기로 했다.
또 최근 계속된 유혈 시위의 여파로 가자지구의 주요 국경인 케렘 샬롬 접경지역을 폐쇄하고 하마스(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가 설치한 국경 근처 지하 터널도 파괴했다고 이스라엘군은 밝혔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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