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미국대사관 개관 앞두고 '폭풍 전 고요'
(라말라<팔레스타인 자치령>=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13일(현지시간) 오전 찾은 팔레스타인자치정부의 행정수도 라말라는 여느 아랍 도시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라말라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클록 스퀘어'(Clock Square) 주변에는 귀금속, 가방, 과일 등을 파는 상점들이 잔뜩 문을 열었고 거리는 어디론가 걸음을 재촉하는 행인들로 붐볐다.
다만,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 깃발들이 팔레스타인의 터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히잡을 쓴 여성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번화가 주변에서 새 빌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경제 개발이 더딘 상황을 엿보게 했다.
팔레스타인 주민이 생업에 바쁜 탓인지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을 하루 앞둔 긴장감은 외견상 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마치 '폭풍 전의 고요'와 같은 것이었다.
거리에서 만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예루살렘 미국대사관에 대한 질문을 꺼내자 미국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자신을 학생이라고 소개한 말리크(23) 씨는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은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짓밟는 것"이라며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수도"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미국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미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수도를 정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회사를 운영한다는 또 다른 팔레스타인인 아흐마드(56) 씨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수도라는 결정은 팔레스타인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거리에서 커피를 파는 아부 이브라함(52) 씨 역시 "모든 팔레스타인인이 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며 "트럼프(미국 대통령)는 팔레스타인 땅을 소유하지 않고 있다. 그것(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 것)을 결정할 권리가 없다"고 개탄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을 한목소리로 비판했지만,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업가인 조시 쿠리(50) 씨는 "우리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싸우기를 원한다"고 말했고, 아부 이브라함도 "팔레스타인 정부가 평화적인 시위로 이스라엘과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라말라를 비롯한 서안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비교적 조용했지만, 하루 뒤 예루살렘 미국대사관 개관식 날에는 긴장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라말라를 방문한 한 이스라엘인은 "예루살렘에서 미국대사관이 개관하는 내일에는 팔레스타인 지역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질 것 같다"고 예상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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