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대가 치른 현대상선 부산신항 터미널 재확보

입력 2018-05-15 18:12  

값비싼 대가 치른 현대상선 부산신항 터미널 재확보
생존 위해 헐값 매각한 지분 몇 배나 주고 다시 매입
"항만공사에 인수 허용했다면 혈세 낭비 막을 수 있었다"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한진해운 파산 후 최대 국적 선사가 된 현대상선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각한 부산신항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권을 다시 확보했다.
현대상선은 15일 부산신항 4부두를 싱가포르의 다국적 터미널운영사인 PSA와 공동운영하는 내용의 기본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위해 현대상선은 재무적 투자자인 IMM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4부두 지분 40%를 매입해 10%이던 지분율을 PSA와 동등한 50%로 높였다.
현대상선은 애초 4부두 지분 50%+1주를 가진 최대 주주였으나 2016년 4월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40%+1주를 PSA에 800억원에 매각한 바 있다.
PSA는 현재 4부두 운영을 맡고 있다.
현대상선은 이 부두 운영사의 최고경영자(CEO)를 임명하기로 PSA와 합의해 매각 2년 만에 다시 운영권을 확보했다.
현대상선 같은 원양 정기선사에 화물을 안정적으로 하역할 수 있는 전용 터미널은 필수적인 인프라다.


현대상선이 모항으로 이용하는 부산신항의 터미널 운영권을 다시 확보한 것은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PSA와 맺은 계약의 불리한 조항이 해소돼 하역료 부담을 줄이게 된 것도 수익성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상선과 PSA가 맺은 계약에는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연간 20피트 기준 70만개의 물량을 4부두에서 처리하는 것을 보장하고 매년 3%의 하역료를 인상한다는 조건이 들어있다.
이 때문에 현대상선은 6년간 경쟁 외국 선사보다 2천억원이 넘는 하역료를 더 지급해야 했지만 PSA와 공동운영에 합의함으로써 이런 부담을 덜었다.
하지만 현대상선의 신항 4부두 운영권 매각과 재확보 과정은 산업의 특성을 무시한 금융논리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현대상선이 IMM으로부터 지분을 매입한 가격은 2천억원대 후반으로 알려졌다.
2016년 PSA에 지분 40%를 매각하고 받은 800억원의 3배 이상이다.


당시와 여건이 달라졌고, 지분의 성격도 조금 차이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불과 2년 만에 같은 비율의 지분을 몇 배나 주고 다시 확보한 것이다.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을 통해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이라는 면에서 보면 그만큼 국민의 세금이 허비된 셈이다.
이 때문에 2016년 현대상선의 4부두 운영권 매각 과정에서 부산항만공사가 이를 인수하도록 허용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가진다.
당시 부산항만공사는 현대상선이 전용 터미널을 상실하면 선사는 물론 항만 경쟁력에도 큰 타격을 받는다면서 공사가 지분을 인수해 국적 터미널을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항만공사는 지분 인수를 통해 이익을 내려는 것이 아닌 만큼 현대상선의 경영이 안정돼 터미널을 다시 사들일 형편이 되면 매입가격에 되팔겠다며 정부를 설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만업계 한 관계자는 "해운과 항만은 긴밀하게 맞물려 있지만 당시 정부는 이런 특성을 깡그리 무시한 채 금융논리만 내세워 해운선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터미널까지 헐값에 팔게 만들었다"며 "두 번 다시는 이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인 부산항발전협의회 박인호 공동대표는 "현대상선이 다시 터미널 운영권을 인수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막대한 국민 혈세가 낭비되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며 "현대상선이 성급했던 점도 있지만, 정부가 항만공사가 공공정책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책임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외국자본에 종속된 신항의 항만 주권을 되찾고 난립한 운영사를 통합하며 항만공사의 터미널 운영사 지분을 확대하는 등 신항의 건설 취지를 제대로 살리도록 정부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lyh9502@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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