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학업중단 60∼80대 6명 초등검정 통과…"내친김에 중졸까지"
전쟁통에 놓친 배움 기회…교사들 헌신으로 5개월 만에 꿈 이뤄
(철원=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전쟁통에 학교도 못 다니고 까막눈으로 평생을 살았는데, 이렇게 초등학교 졸업까지 하게 해주신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강원도 철원군 문혜1리 마을회관에 마련된 반딧불 문해학교에서 늦깎이 배움을 통해 초등 검정고시에 도전한 어르신 전원이 합격해 화제다.
이들의 도전 뒤에 문해지도사 6명의 헌신이 드러나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철원군에 사는 홍금순(83), 김방연(82), 송영희(78), 김명순(77), 임향숙(73) 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올라 어린 시절 배움의 기회를 잃었다.
지체장애를 가진 이종권(60)씨는 어릴적 특수교육 시설이 없어 아예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한글도 깨치지 못한 채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던 이들 어르신은 2016년, 동네에 문해학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교실 문을 두드렸다.
강경숙(56), 정만식(71), 차정연(52), 정희순(56), 박은주(50), 허영빈(48) 등 여섯 명의 문해지도사들은 조심스레 학교 문턱을 넘은 이들을 반갑게 맞으며 스승이 됐다.
어르신들은 처음에는 자기 이름만 겨우 그릴 정도의 국어 수준으로, 읽고 쓰기를 할 수 없었다.
배움의 한과 함께 두려움도 가진 터라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까막눈"이라며 자신 없어 하는 늦깎이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은 가장 먼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철원의 기둥이다", "분명 잘 해내실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어르신의 모습에 용기를 얻을 것이다"라는 선생님들의 응원에 60∼80대 학생들은 조금씩 배움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늦깎이 학생들이 한글을 깨치자, 교사들은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초등학교 졸업장을 따자"는 교사들의 말에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내가 감히…'라며 다시 위축되는 어르신들을 향해 교사들은 "지금껏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를 믿고 따라와 주시면 분명 합격하실 수 있다"고 믿음을 줬다.
나이 지긋한 선생님 6명과 학생 12명은 2017년 11월 24일 초등검정고시반 문을 열고 4개월여 남은 시험을 준비했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처음 받아든 학생들은 긴장 속에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송영희씨는 "처음에는 책을 폈는데 눈앞이 캄캄했다"며 "선생님들이 겁먹지 않도록 재밌게 가르쳐주셔서 점차 공부에 재미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강원도의 혹독한 추위도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을 어렵게 만들었다.
철원은 겨울이면 소주병도 깨트려버릴 정도의 혹한으로 유명하다. 이에 교사들은 학교에서 멀게는 10여㎞ 떨어진 학생들을 개인 승용차로 일일이 태워주며 통학을 도왔다.
하루 3시간씩 주 2회, 6과목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 절반이 여러 사정으로 고시를 포기하게 됐다.
마지막까지 남은 여섯 학생은 선생님들과 함께 더욱 학업에 집중했다.
시험을 1주일 앞두자, 교사들은 매일 수업을 열고 학생들에게 모의고사를 치렀다. 이를 위해 몇몇 교사들은 직장에 휴가를 내기도 했다.
지난달 7일, 고사장으로 향하는 제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선생님 6명은 모두 춘천까지 동행했다.
선생님들의 이런 열정과 헌신으로 늦깎이 수험생 6명 모두 초등학교 졸업장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교실에서 만난 학생들은 모두 "합격은 전부 선생님들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명순씨는 "선생님들이 떨어져도 괜찮으니 열심히 하라는 격려가 큰 힘이 됐다"며 "언제까지나 우리 선생님이 돼주셨으면 좋겠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까막눈 어르신들을 합격으로 이끈 문해지도사들은 되레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국어를 가르친 정희순 문해지도사는 "많은 연세에 하루 세 시간씩 의자에 앉아있기도 힘들었을 텐데 끝까지 우리를 믿고 따라와 줘 너무 고맙다"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많은 도전을 받았다"고 말했다.
내친 김에 "우리를 다시 믿고 중졸 검정고시까지 함께 하길 바란다"고 바람도 전했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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