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해법' 거론한 볼턴 강력 비난에 "北 전통적 협상각본"
트럼프 '의중' 떠보고 협상 주도권 잡기…"트럼프, 선택 기로에 직면"
'슈퍼매파' 볼턴 밀어내기 관측도…"北 규범적 행동…회담무산 가능성 낮아"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북한이 16일 잇따라 '세기의 담판'인 북미정상회담을 재고할 수 있다는 공개 협박을 날린 데 대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의 전통적 '협상 각본'(playbook)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미 연합훈련을 이유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 담판' 취소 가능성을 시사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이어 명시적으로 '정상회담 재고려'를 언급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가 정말로 회담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의도로는 보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보다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을 깰 수도 있다"고 위협함으로써 상대방인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떠보고 협상의 주도권을 거머쥐려는 전략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최대 쟁점인 비핵화 문제를 놓고 유리한 방향으로 의제를 끌고 가서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북한 비핵화의 목표인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또는 'PVID'(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상당수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기선잡기' 협상전략…정상회담 무산 가능성은 낮아
애덤 마운트 미국 과학자연맹(FSA) 선임연구원은 CNN 방송에 "평양은 협상을 완전히 끝내려는 게 아니라 협상 조건의 개정을 추구하는 것"이라면서 "미국은 '자국과 동맹의 안보를 향상시키지만 즉각적 비핵화에는 못 미치는 합의를 하느냐', 아니면 '성과 없이 물러나느냐'라는 중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랠프 코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퍼시픽포럼 소장은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북한의 규범적 행동"이라며 "북한은 상황을 통제하며 한국과 미국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시험해보고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상기시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코사 소장은 그러나 북한의 이번 발표를 '소동'에 비유하고 최근의 진전된 상황을 중단시키는 '정지장치'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밴 잭슨 전 미 국방부 장관 정책자문은 같은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초기에 트럼프 정부한테서 얻어낸 양보안을 확실히 하거나, 최근의 대화기류에 대한 북한 내 우려를 관리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다만 그는 미국이 미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한다면 북한은 더 많은 요구를 압박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칼럼니스트 프리다 기티스는 CNN에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시험하고 있다"며 "김정은은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지키지 못할 작은 양보나 약속을 하면서 (상대방에게서) 양보와 경제·정치적 이득을 얻어내려 했던 것을 똑같이 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내 중국 전문가로 꼽히는 고든 창도 CNN에 "북한은 정기적으로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이번 발표는 단지 협상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고, 미 외교전문매체 '디플로매트'의 편집장 앤킷 팬더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북한의 움직임을 '벼랑 끝 전술'에 비유했다.
팬더 편집장은 "북한은 단지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북미정상회담을 원하는지 시험해보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썼다.
인터넷 매체 복스는 전문가들이 북한의 '엄포놓기'일 수 있고,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무산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랜드 폴(공화·켄터키) 의원은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발표에 대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대해서는 여전히 낙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北, CVID 거부 메시지"…'슈퍼매파' 볼턴 밀어내기 분석도
북한이 정상회담을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대미 강경 기조로 돌아선 것은 지금까지 제시된 미국의 비핵화 모델을 호락호락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기선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팬더 편집장은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의 담화로부터 배워야할 게 하나 있다면, 그것은 북한 정권이 명시적으로 CVID를 거부했다는 것"이라고 적었고, 마운트 연구원도 트위터를 통해 "담화의 핵심은 노골적인 비핵화의 거부"라고 진단했다.
특히 '슈퍼매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4일 방송 인터뷰에서 또 다시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것이 북한을 자극해 이런 대응을 유발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구체적인 보상 없이 '완전한 비핵화'부터 달성하라는 미국의 압력에 빈정이 상했다는 것이다.
로라 로젠버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국·중국 담당 국장은 트위터에 "이 담화는 트럼프가 아니라 볼턴을 조심스럽게 겨냥한 것"이라면서 "북한은 둘 사이에 틈이 있다는 계산을 하고 누가 운전석에 있는지를 테스트했다. 그들의 바람은 트럼프가 볼턴을 버스 아래로 내던지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도 트위터에 "이것(북한의 위협)은 한미 연합훈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것은 일요일 토크쇼에 관한 것"이라며 "그들은 볼턴과 폼페이오가 출연한 것을 지켜봤고, 그들이 본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 소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정상회담을 원하지만 북한은 '압박이 그들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냈다'는 미 행정부 관리들의 주장에 화가 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조슈아 폴락 미들버리국제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의 돌연한 입장 전환이 "자신들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가 주요 제재는 유지할 것이라는 발표에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올리버 호섬 코리아리스크그룹 편집장은 CNN에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가 다 된 일인 것처럼 행동했다"며 "지금 북한은 그것이 식은 죽 먹기가 아니며 '우리도 터프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 한미동맹 균열 포석…"김정은, 시진핑의 뜻 이행"
역사적인 회담을 앞두고 한미동맹의 균열을 야기하려는 전략적 포석이 깔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데이비드 맥스웰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워싱턴 정보지인 '넬슨 리포트'에 올린 글에서 "회담의제를 통제하려는 의도와 함께 한미동맹에 균열을 내려는 오래된 목적이 있다"며 "김정은은 동맹의 균열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분석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뉴욕타임스(NYT)에 북한의 이번 발표가 한미연합훈련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될 것임을 암시했다고 진단했다.
조지 W. 정부 시절 북한과 협상 경험이 있는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NYT에 "북한의 위협이 보다 심각한 것일 수 있다"면서 북한이 한국을 모욕한 역사가 있고, 일상적으로 미국은 동맹국을 방어해왔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북한의 이 같은 입장표명을 중국과의 관계와 연결지은 분석도 있다.
보니 글레이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 선임 고문은 김 위원장이 최근 두 차례 회동했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이 한미연합군사훈련 문제를 다시 논의 대상에 올리도록 의견을 제시했고, 김 위원장은 시 주석의 뜻을 이행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고든 창은 북한의 발표가 이번 주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국과 중국 간의 관세협상과 연결지어, 북한이 중국에 백악관에 대한 레버리지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noma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