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 6번째 작품…8년만의 복귀작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올해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되며 화제를 모은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이 베일을 벗었다.
'버닝'은 프랑스에서는 16일 오후 6시 30분(현지시각)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공식 상영됐고, 앞서 한국에서는 14일 오후 2시 용산 CGV에서 사전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버닝'은 우울하고 답답한 영화다. 러닝 타임이 147분에 이르지만, 영화가 시작한 지 90분가량 지나도록 '어떤 영화'라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세 젊은이가 빚어내는 부조화에서 비롯된 답답함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중반 이후 종수(유아인 역)가 느끼게 되는 분노의 감정이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메인 포스터에 삽입된 문구는 '이제 진실을 얘기해봐'이지만 이 영화는 끝까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해미의 고양이는 실제로 있었는지', '해미의 우물 이야기는 진실인지', '벤의 비닐하우스는 어떤 의미인지' 영화 곳곳에 배치된 미스터리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하지 않는다.
분노와 미스터리는 이 작품 키워드다. 이창동 감독은 오늘날 젊은이들이 느끼는 분노에 주목했다.
이 감독은 지난 4일 출국 전 기자회견에서 "지금 젊은이들은 현재 희망을 느끼지 못하고 미래의 희망도 찾기 어렵지만, 분노의 대상을 찾을 수 없어 더욱 무력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겉으로는 점점 세련되고 편리해지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멀쩡해 보이는 이 세상이 그들에게는 커다란 수수께끼처럼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수는 분노한 젊은이의 표상이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종수 아버지는 군청 공무원을 폭행해 재판을 받으며, 어머니는 진작 집을 나갔다.
종수는 소설가를 꿈꾸지만 어떤 소설을 쓸지 결정하지 못하고 택배 회사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벤(스티븐 연 분)은 종수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부유하고 "재미만 있으면 난 뭐든지 해"라고 말하는 벤에게 종수는 알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종수의 어릴 적 친구 해미(전종서 분)는 종수의 무력감을 부각하고 나아가 분노로 치환하는 역할을 한다.
해미가 종수의 낡은 트럭 대신 벤의 포르셰를 선택했을 때, 벤과의 만남 이후 사라진 해미로 인해 종수가 느꼈을 무력감과 분노의 감정은 익히 짐작 가는 바다.
유아인은 이 작품으로 '베테랑'의 탕아 '조태오' 이미지에서 탈피했다. 목표를 잃은 듯한 눈빛과 자신감이 결여된 목소리, 멍한 표정으로 답답한 현실에 짓눌린 종수를 소화해 냈다.
전종서는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자유롭고 감정에 충실한 해미를 제대로 표현했다.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였으며 과감한 노출도 마다치 않은 점에서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로 데뷔한 김태리를 연상케 한다.
공교롭게 2년 전 김태리처럼 전종서도 칸영화제 초청을 받았다. 김태리에 이어 전종서가 칸을 매혹할 수 있을지도 이번 칸영화제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벤 역할을 맡은 스티븐 연은 미국 인기드라마 '워킹 데드' 시리즈와 영화 '옥자' 등에 출연해 국내외 팬을 확보했다.
그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이창동 감독은 "스티븐 연이 가진 밝고 신비한 매력이 벤 캐릭터와 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는 벤이 종수에게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가 있다"고 말하면서부터 반전으로 접어든다.
종수의 집에서 아주 가까운 비닐하우스를 태울 것이라는 벤의 말에 종수는 매일 새벽 집 근처 비닐하우스를 살피러 나가지만 불에 탄 비닐하우스는 보이지 않는다.
종수는 벤이 말한 비닐하우스가 실제 비닐하우스가 아닐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영화는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버닝' 원작은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다. 또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는 윌리엄 포크너의 1939년작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Barn Burning)를 원작으로 한다. 극중 종수는 좋아하는 소설가로 윌리엄 포크너를 언급한다.
이창동 감독은 하루키의 '헛간'을 '비닐하우스'로 재해석했다.
이 감독은 "한국에서는 헛간이 아니라 비닐하우스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비닐하우스를 생각하게 됐다. 투명하면서도 지저분한 비닐 이미지. 그 비닐 너머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곳을 들여다본다는 것. 거기에 우리 영화만의 비밀이 숨어있을 것 같았다"고 밝힌 바 있다.
원작에서 헛간은 불타지 않는다. 사실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는 그야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결말을 택하지 않았다. 찜찜하고 답답한 결말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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