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개와 늑대들의 정치학'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선거는 우리가 민주국가에 살고 있음을 체감할 드문 기회지만, 실상 민주주의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권자로서 자신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제도지만, 선거로 뽑은 소수 권력자가 유권자 뜻과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할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신간 '개와 늑대들의 정치학'(추수밭 펴냄)은 인류사를 바꾼 정치적 선택의 순간들을 통해 민주주의와 선거의 의미를 천착해 들어간다.
저자는 동서양 역사와 정치를 넘나들며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는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다.
책 제목은 빛과 어둠이 혼재돼 멀리서 다가오는 동물이 나를 반기는 개인지, 해치려고 달려드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황혼녘을 의미하는 프랑스 격언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따왔다.
선거는 누가 내 편이고, 누가 적인지 피아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개와 늑대의 시간'과 같다고 보는 저자의 예리한 통찰이 돋보인다.
책은 고대 로마에서 1987년 한국에 이르기까지 선거에서 '개'를 선택해 성공한 소수 사례와 '늑대'를 선택해 실패한 다수 사례를 자세히 살핀다.
로마 공화정 유권자들은 기원전 60년 선거에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한 카이사르를 지도자로 선택한다. 그는 독재자가 돼 황제로 등극하기 직전 측근에게 암살당했지만, 결국 로마 공화정은 무너지고 황제가 통치하는 제정으로 바뀌었다.
7세기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상을 토대로 이슬람제국을 건설한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에 후계자들이 칼리프 자리를 놓고 벌인 피비린내 나는 암투는 도를 넘어선 맹목적 지지자들이 정치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1784년 24세에 영국 사상 최연소 총리가 된 윌리엄 피트는 부패선거구를 통해 정계에 진출한 데다 휘그와 토리 양당의 불신을 받았지만, 임기 내내 정치신념을 일관성 있게 유지함으로써 영국 의회정치 기틀을 다졌다.
저자는 피트를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개혁을 추구하는 보수의 가치를 세운 전범으로 평가한다.
1930년대 독일 신생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경탄할 만한 이미지 메이킹 노력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는 찬란한 문명을 가진 지성적인 시민들도 열악한 정치·경제적 여건 속에선 재앙과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몽골제국의 몽케, 프랑스의 루이 나폴레옹, 미국의 우드로 윌슨과 링컨, 존 F.케네디, 영국 대처, 그리고 1987년의 김영삼과 김대중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선거와 민주주의에 살아있는 교훈이 될 역사를 소개한다.
저자는 선거를 민주주의와 쉽게 등치하는, 그래서 어쩌다 더 나아 보이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지는 것만으로 민주시민의 역할을 다했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의식을 일깨운다.
"그들은 저마다 우리의 충견이 되겠다고 하지만 훗날 탐욕스러운 늑대였던 경우가 많았다. 설령 개를 뽑았다고 해도 광견이 되어 주인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았다. 늑대들에게 속지 않도록 주의하고 개가 날뛰지 못하도록 목줄을 꽉 붙잡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진행해 나가는 데에서 오는 시련을 견디고 우리를 대변하는 자들을 길들여야만 우리는 진정 우리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있다."
396쪽. 1만7천800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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