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못 피하면 가스전 사업중단"…이란, 핵합의 유인 잃을 수도
'이란 핵합의 준수' EU에 큰 압박…에어버스·지멘스·르노 등도 진퇴 고민
(파리·서울=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장재은 기자 = 프랑스의 세계적인 정유업체 토탈(Total)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부터 예외를 인정받지 못하면 이란의 가스전 프로젝트 역시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방침은 유럽연합(EU)이 미국이 무력화를 시도하는 이란 핵 합의를 준수하겠다고 결의한 상황에서 재확인된 변수로 EU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토탈은 16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미국의 핵 합의 탈퇴로 이란의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 사업(SP11)을 지속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의 이란 제재 예외를 인정받지 않는 한 토탈은 오는 11월 4일까지 파르스 가스전 개발과 관련한 모든 사업을 중단할 방침이다.
미국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에너지 부문에 대한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기로 하되 기업들에 준비 기간을 준다며 그날까지 180일간 유예기간을 둔다고 밝힌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이란에 '최대의 압박'을 가한다며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의 방식으로 대이란 제재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란뿐만 아니라 토탈처럼 이란과 거래해 제재 효과를 떨어뜨리는 유럽 동맹국의 기업들도 미국 제재의 표적이 되는 사태가 예고된 것이다.
프랑스 최대 정유·에너지 기업인 토탈은 이란의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에 50억 달러(약 5조3천900억 원)의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토탈은 작년 7월 이란과 48억 달러(약 5조1천700억 원) 규모의 사우스 파르스 11공구의 해상가스전 개발·생산 본계약을 맺었다. 이는 핵 합의 이행 이후 처음으로 이란이 서방 에너지 기업과 맺은 투자계약이다.
토탈은 자사의 이란 내 금융거래의 90% 이상이 미국 제재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면서 "우리는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에 노출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토탈은 SP11 프로젝트에 투입한 비용이 현재까지 4천만 유로(약 509억 원)가 넘지 않고, 최근 사업 다각화를 이뤄 이 사업을 중단하더라도 2016∼2022년 연 5%의 생산량 신장목표를 달성하는 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핵 합의를 준수, 이란에 대한 투자가 계속되도록 하겠다며 이란 내 유럽기업을 보호할 대책을 마련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이란이 핵 개발을 계속 동결할 경우 서방국가의 투자를 보장하고 이란의 원유 수출이 가능하도록 긴밀히 협의 중이다.
전문가들은 토탈과 같은 대형 사업체가 이란 사업에서 손을 뗀다면 유럽의 이 같은 노력이 갑작스럽게 중단되고 말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란 정부가 에너지 부문에 대한 해외투자가 없다면 이란 핵 합의를 유지할 유인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해설했다. 이란은 향후 5년간 2천억 달러 규모의 해외투자를 유치해 에너지 인프라를 현대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 전기전자 기업 지멘스, 자동차 제조업체 르노 등 이란에 투자한 다른 대기업들도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때문에 토탈과 유사한 압력을 받고 있다.
이란 핵 합의가 와해 압박을 받자 다자간 합의 도출에 주도적 역할을 한 프랑스, 영국, 독일은 자국 이익뿐만 아니라 유럽의 위상을 지키기 위한 난제에 부닥쳤다.
컨설팅업체 에너지 애스팩츠의 리처드 맬린슨은 FT 인터뷰에서 "유럽이 덫에 걸렸다"며 "미국의 대이란 제재와 이란정책 일탈을 우려하면서도 세컨더리 보이콧을 차단해 미국과 대결 수위를 높이는 것은 원치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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