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성범죄대책위 전수조사…"2차피해 우려해 신고 꺼려"
"성희롱 고충사건 내부결재 없애라"…시스템 전면개편 권고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법무부 및 산하기관과 검찰에 근무하는 여성 직원 10명 가운데 6명이 성폭력이나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를 계기로 출범한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위원장 권인숙)는 법무부 장관에게 고충처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라고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권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하는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대책위는 법무부 본부조직은 물론 검찰청, 교도소·구치소, 출입국·외국인청 등 전국의 법무부 소속기관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 총 8천194명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벌였고, 조사대상의 90%인 7천407명이 설문에 응했다.
응답자의 신원 노출 우려를 덜기 위해 설문은 온라인이 아닌 서면으로 이뤄졌고, 익명으로 기재돼 밀봉 처리된 응답지는 제3의 조사기관에서 통계적으로 분석했다는 게 대책위의 설명이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61.6%가 성희롱, 성범죄와 같은 성적(性的) 침해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임용 기간 3년 이하인 신입 직원 중에서도 성희롱이나 성범죄 피해를 보았다고 답한 비중이 42.5%에 달했다.
피해 경험 비중이 높은 데도 공식적인 고충처리 절차는 '유명무실'했다고 위원회는 진단했다.
법무부와 소속기관, 검찰 등 총 259개 기관에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위원회가 열린 횟수는 단 3회였다. 성희롱 관련 고충사건을 처리한 사례도 18건에 불과했다.
대책위가 소속기관을 순회하며 연 간담회에서 직원들은 '신고 시 내부 결재라인을 따르는 보고체계가 복잡하고 담당자의 전문성이 결여됐다', '신고해도 은폐되는 구조와 감찰에 대한 불신이 있다', '제대로 처리가 된 전례가 없다' 등의 이유를 들어 내부 절차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설문조사에서는 '달라질 것이 없어서'(31.3%),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24.8%),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 같아서'(22.5%), '남에게 알려질까 두려워서'(18.2%) 등이 이유로 거론됐다.
설문에서 피해 경험이 있다고 밝힌 법무부 본부 및 소속기관(검찰 제외) 응답자들은 63.2%가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답했고, 이런 응답 비율은 검찰(66.6%)에서 더 높았다.
권 위원장은 "간담회에서 가장 자주 나온 얘기는 '폐쇄적이고 전국적인 조직 특성 탓에 피해자 신상이 매우 빠르게 드러나 2차 피해는 즉시 발생하는 반면, 성희롱 고충사건 처리는 제대로 되지 않아 피해자 보호가 되지 않는다'라는 점이었다"라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2차 피해 우려가 더욱 큰 조직 특성을 고려해 성희롱 및 성범죄에 따른 고충처리가 실효성 있게 처리될 수 있도록 내부 절차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라고 권고했다.
구체적으로는 성희롱·성범죄 고충처리를 전담할 장관 직속 전문기구(성희롱 등 고충처리 담당관)를 설치해 처리 절차를 일원화하고, 각 기관의 성희롱 고충처리 담당자는 사건 접수 시 내부결재를 거치지 않고 장관 직속기구에 직보하게 하라고 주문했다. 조직 보호논리를 앞세워 사건을 은폐하려는 상급자의 시도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법무부 내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해 고충사건 처리를 점검하도록 하고, 사건 관련자의 정보 접근을 철저히 제한하는 등 2차 피해 방지대책을 포함한 성희롱·성범죄 고충사건 처리 지침을 마련해 시행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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