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이후 두번째 '대항입법'…핵합의 파기 vs 존치 힘겨루기
EU집행위 "유럽기업 보호는 의무"…기업들 이란탈출 분위기는 지속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이란핵합의의 파기를 추진하는 미국과 존치 입장으로 맞서는 유럽이 결국 치킨게임에 들어간다.
미국이 강력한 제재로 이란의 교역을 근본적으로 저해하려고 하자 유럽은 이를 일부 차단하기 위한 법적 절차를 밟기로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17일(현지시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 참석, 미국의 제재로부터 유럽기업을 보호하는 법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융커 위원장은 "우리는 '대항입법'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며 "이는 EU 안에서 미국 제재가 일으키는 외부 효과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반드시 그 조처를 해야 하고 내일 오전 10시 30분에 그렇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이란핵합의에서 탈퇴를 선언하면서 표적품목에 따라 90일, 180일 유예기간을 두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기로 했다.
특히 미국은 이란뿐만 아니라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기업들에도 세컨더리보이콧(제3자 제재)의 형식으로 타격을 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EU 28개 회원국은 지역 안보, 자국 이익을 위해 이란핵합의의 존치, 즉 이란과의 지속적 거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과 교역하는 유럽기업을 보호할 수단으로 '대항입법'이 검토돼왔다.
대항입법은 1996년 마련된 규정으로 EU의 기업이나 법원이 외국의 제재 법률을 따르는 것을 금지하고, 외국 법원의 판결이 EU 내에서 일절 효력을 갖지 못하도록 한다고 적시한다.
EU에 소속된 국가들이 공동으로 출자한 투자기관인 유럽투자은행은 이란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에 자금을 제공하는 보완조치에 가담할 예정이다.
융커 위원장은 "미국 제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이에 따라 EU는 유럽기업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이는 특히 중소기업에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우리는 이란이 핵합의를 전적으로 준수하는 한 핵합의에 남겠다고 만장일치로 합의했다"며 "거기에 더해 EU 집행위는 어디든지 유럽의 이익이 악영향을 받는 곳에서 행동할 태세를 갖추는 데 청신호를 보냈다"고 거들었다.
EU는 앞서 쿠바에서 활동하는 기업을 미국의 대쿠바 금수조치로부터 보호하는 데 대항입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
유럽 지도자들의 강력한 결의에도 미국이 예고한 광범위한 대이란 제재의 효과는 산업계에 벌써 나타나고 있다.
덴마크의 해운업체 A.P. 몰러-머스크는 이란과의 상업활동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의 원유운반업체인 머스크는 5월 8일 전의 계약은 이행하겠으나 에너지 부문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발효하는 11월 4일까지 사업을 접겠다고 설명했다.
머스크에 이은 세계 2위 해운사 스위스 MSC도 미국의 대이란 제재 효과를 평가해 진퇴를 고민하겠다는 입장을 앞서 밝힌 바 있다.
프랑스의 정유업체 토탈도 미국의 제재를 면제받지 못한다면 이란과 합의한 가스전 사업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 자동차 제조업체 르노, 전기전자 기업 지멘스 등 이란에 투자한 다른 대기업들도 비슷한 압력을 받고 있다.
jangj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