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여성 화두로 시작해 여성으로 막 내리다

입력 2018-05-20 06:41  

[칸영화제] 여성 화두로 시작해 여성으로 막 내리다
영화 '버닝' 수상 불발이 "최대 이변"




(칸<프랑스>=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제71회 칸국제영화제가 12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해마다 뜻밖의 수상작을 내온 칸영화제이지만, 올해 수상작은 대체로 무난했다는 평이다. 오히려 가장 많은 호평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수상권에서 밀려난 게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이번 칸영화제는 여성을 화두로 시작해 여성에 대한 지지로 막을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주 출신 배우 케이트 블란쳇을 비롯해 총 9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중 과반인 5명을 여성으로 구성했다. 수상작들 역시 여성에 대한 시선을 담은 작품들이 제법 눈에 띈다.
◇ 여성·사회 문제 다룬 작품들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은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만비키 가족'에게 돌아갔다. 올해 총 21편의 경쟁작 중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영화 8편이 포함돼 아시아 강세를 예고했던 터다.
그동안 따뜻한 가족영화를 그려온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만비키 가족'을 통해 다시 한 번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 영화는 할머니의 연금과 좀도둑질로 먹고사는 가족이 집 앞에서 홀로 추위에 떨고 있는 다섯 살 소녀를 가족으로 맞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극 중 여섯 식구는 좁은 방에 한데 몰려 살면서도 큰소리 한번 내는 법이 없다. 웃음이 넘치고 화목하며 서로 따뜻하게 보듬어준다. 그러다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던 아들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가족 구성원의 아픈 사연이 드러난다. 감독은 가족을 가족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핏줄인지 아니면 함께 보낸 시간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에는 여러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부모에 의해 버려진 여자아이,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여성, 성매매로 살아가는 젊은 여성까지. 감독은 빈민층 가족의 삶을 통해 빈부 격차와 사회안전망 부재와 같은 사회 문제는 물론 여성 문제 등으로 주제를 확장한다.



각본상을 받은 이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쓰리 페이시스' 역시 3명의 여성을 통해 남성 위주의 전통 속에서 꿈을 펼치지 못하는 이란 여성의 현실을 보여준다.
카자흐스탄 출신 세르게이 드보르체보이 감독의 '아이카'는 직업도 없고, 지낼 방조차 없는 주인공 아이카가 출산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에 출연한 사말 예슬리야모바는 여우주연상을 탔다.
올해 경쟁 부문에 오른 총 21편 중 여성 감독 영화는 3편이며 이 중 레바논 나딘 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심사위원상)과 이탈리아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라자로 펠리체'(각본상) 2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심사위원과 작품, 수상작들을 볼 때 올해 칸영화제는 여성으로 시작해 여성에 대한 지지로 끝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들도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많이 움직였다. '가버나움'은 레바논 빈민가에 사는 12살 소년의 험난한 생존기를 그린다. 영화는 한 남자를 칼로 찌른 혐의로 구속 수감된 소년이 자기 부모를 고소해 부모와 함께 법정에 선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이 소년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여주며 극빈층의 힘들고 고단한 삶을 펼쳐 보인다. 극 중 거리에 내몰린 어린이들은 인신매매와 마약, 조혼 등 각종 범죄와 사회 악습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미국 스파이크 리 감독의 '블랙클랜스맨'에 2등 상인 심사위원 대상을 안긴 점도 눈에 띈다. 스파이크 리는 '똑바로 살아라' 등 여러 편의 영화를 통해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고발해왔다.
이번 수상작 역시 1978년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에 잠복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경찰의 실화를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그린다.
영화 말미에는 미국에서 발생한 폭동 장면과 트럼프의 연설, 성조기 등을 삽입해 메시지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 '버닝' 본 수상 불발 이변…벌칸상·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2관왕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아쉽게 무관에 그쳤다. '버닝'은 영화제 소식지 스크린데일리 평점에서 역대 최고점(3.8점)을 기록하고, 세계 유수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수상이 유력시됐던 작품이어서 수상 불발은 이변이라는 반응이 많다.
일각에서는 '버닝'에 담긴 은유와 상징, 모호함, 미스터리한 코드가 심사위원단에 다소 어렵게 다가간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영화계는 '버닝'의 본상 수상 실패에 다소 침울한 분위기다. 한국영화는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받은 이후 8년째 수상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한 영화인은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받은 '버닝'이 상을 못 타면서 앞으로 한국영화 수상은 더욱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버닝'은 그러나 최고 기술상에 해당하는 벌칸상과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등 번외로 2관왕을 수상해 아쉬움을 달랬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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