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수사했더라면 반칙 업체 올림픽 무대 서는 일 없었을 것"
업계 "무혐의 처분한 사건 항소 부담"…檢 "항소 포기 내부 기준 따른 것"
(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2018 평창동계올림픽 정빙기 부정 입찰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1년 전 무혐의 처분한 검찰의 부실 수사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납품 실적을 거짓으로 부풀리는 반칙을 써 15억원 상당의 평창올림픽 정빙기 납품 사업을 따낸 혐의(입찰방해 등)로 기소된 I 업체 대표 A씨는 최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A씨와 검찰 모두 항소를 포기해 1심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 사건은 서울고검의 재기 수사 명령과 춘천지검의 재수사를 통해 형이 확정되기까지 꼬박 2년여가 걸렸다.
그 사이 I 업체 대표 A씨가 올림픽 무대에 납품한 비리 정빙기는 테스트 이벤트와 본 대회의 빙판을 닦아 페어플레이를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올림픽 정신을 얼룩지게 했다.
A씨는 이뿐만 아니라 역대 동계스포츠 사상 최대 규모의 빅 이벤트에 사업자로 참여함으로써 유무형의 큰 자산까지 챙겼다.
결과적으로 검찰의 부실 수사는 반칙 업체를 평창올림픽 무대에 서게 만든 꼴이 됐다.
그렇다면 검찰이 1차 수사 때 I 업체 대표 A씨를 '무혐의' 처분한 이유는 뭘까.
정빙기 부정 입찰 의혹은 2016년 3월 강원도가 발주한 '관급자재(정빙기) 구매 및 임대 사업자' 선정 직후 제기됐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R 업체는 정빙기 모델 '잠보니 552'가 수입이 전무하고, '잠보니 526'은 단 3대밖에 수입된 사실이 없다는 점을 들어 I 업체와 S 업체 간의 납품 거래가 조작됐다며 그해 5월 I 업체를 검찰에 고발했다.
또 이를 위해 세금계산서와 매매계약서, 거래명세서도 모두 거짓으로 꾸몄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1차 수사에서 의혹이 제기된 2대의 정빙기 모델 실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다른 입찰 때문에 I 업체로부터 1억7천600만원에 정빙기를 구입한 뒤 집 앞 공터에 포장을 씌워 보관했고, 탈락한 후에는 I 업체에 정빙기 1대를 임대했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A씨의 진술과 부합하는 S 업체의 주장을 불기소 결정서에 담았다.
입찰 당시 제출한 S 업체와의 납품 거래 실적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임대 실적이 추가로 있어서 I 업체가 허위 서류를 꾸며 제출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도 내렸다.
여기다 S 업체와 거래 실적을 제출하지 않아 적격심사에서 부적격 통보를 받았더라도 사흘 내에 추가 실적자료를 내면 적격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검찰은 I 업체 대표 A씨에게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 결정을 하면서 "일부 정황 증거만으로는 A씨의 피의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정빙기 2대를 판매한 사실이 인정되고 세금계산서 내용이 허위임을 인정할 증거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 1차 수사는 부실투성이였다는 게 서울고검의 재기 수사 명령과 재수사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I 업체와 1억7천600만원의 정빙기 2대를 구매한 S 업체는 A씨의 권유로 설립한 사실상의 페이퍼 컴퍼니로 확인된 것이다.
또 평창올림픽 정빙기 입찰을 위해 날짜를 소급해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정빙기 대금도 서로 짜고 은행 통장에 입금한 사실도 재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결국, 입찰 당시 2순위였던 I 업체는 강원도로부터 적격심사 서류 제출을 요청받자, 이를 통과하기 위해 납품 실적을 허위로 꾸며 사업자로 선정되는 등 입찰의 공정을 해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무엇보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반성의 뜻을 재판부에 밝혔다.
A씨의 혐의 인정은 결국 검찰의 1차 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을 방증한 셈이 됐다.
해당 업계 관계자는 22일 "검찰이 철저히 수사했더라면 반칙 입찰 업체가 올림픽 무대에 서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A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한 검찰이 항소하지 않은 것도 1차 수사의 부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구형한 형량에 어느 정도 근접한 1심 결과가 나오면 항소를 하지 않는 내부 기준이 있다"며 "이 기준에 해당하기 때문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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