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나라에서 존경받는 것이 그곳에서 양성될 것이다."
플라톤이 했다는 간결하고 직관적인 이 말에는 고대 그리스의 '천재론'이 담겼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사람들이 원하고 그에 걸맞은 천재를 갖게 된다는 얘기다.
어째서 그럴까. 천재는 타고난다고도 하고, 만들어진다고도 하는데 무엇이 맞는 걸까.
신간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문학동네 펴냄)는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천재들을 낳고 기른 과거와 현재 도시들을 돌아봄으로써 이 같은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저자는 전미 라디오 방송국(NPR)의 해외특파원으로 활동한 에릭 와이너로 앞서 국내 번역 출간된 '행복의 지도'(웅진지식하우스 펴냄)와 '신을 찾아 떠난 여행'(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썼다.
천재, 지니어스(genius)는 사람을 따라다니는 수호신을 의미하는 라틴어 '게니우스'에서 유래했다. 남다른 지적 능력이라는 오늘날의 사전적 정의는 18세기 낭만주의 시인들을 수식하면서 생겨났으며, 창조적 천재라는 현대적 천재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는 1950년대 이후다.
천재의 비밀을 캐는 근대적 '천재학' 연구는 19세기 과학자로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 경이 시작했다. 그는 천재가 타고난 능력으로 결정된다고 확신했는데, 오늘날의 유전 연구 결과로 보면 이 같은 믿음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
1960년대 천재학 연구에 뛰어든 딘 키스 사이먼턴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 캠퍼스 심리학 교수는 계량역사학적 방법론을 통해 천재가 어쩌다 한 명씩 태어나는 게 아니라 특정 장소에서 무리 지어 등장한다는 가설을 내놨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수많은 철인(哲人)이 활약하던 고대 아테네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로셀리 등이 함께한 16세기 피렌체가 대표적인 예다.
책은 이 같은 가설을 받아들여 천재들의 발자취를 좇는 순례를 시작한다.
순례는 민주주의와 철학의 모태인 고대 아테네에서부터 10~13세기 과학기술을 선도한 중국 송나라 수도 항저우(杭州), 르네상스 중심지 이탈리아 피렌체, 계몽주의 시대 근대학문의 기틀을 다진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 문학과 예술을 꽃피운 인도 콜카타, 고전음악과 정신분석학의 도시 빈, 그리고 정보기술(IT) 혁명의 산실인 실리콘밸리까지 7개 지역으로 이어진다.
이와 함께 천재에 대한 신화 혹은 속설들의 타당성을 검토함으로써 천재가 각 도시의 고유한 문화 속에서 탄생했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그리고 이들 천재의 도시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문화적 속성을 추출한다.
그중 하나는 개방성이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불안정한 시대를 살았지만, 여느 도시국가들처럼 뒤로 물러서거나 향락에 빠지지 않고, 외국 문물, 기이한 사람들, 낯선 아이디어 등 모든 것에 열려있는 개방성을 유지함으로써 아테네를 아테네답게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개방성이 실리콘밸리의 특징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발명된 것은 거의 없다. 트랜지스터는 뉴저지에서, 휴대전화는 일리노이에서, 월드와이드웹은 스위스에서, 벤처 투자는 뉴욕에서 발명되었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고대 아테네인과 마찬가지로 상거지다. … 그들은 외국인에게서 빌린 (또는 훔친) 것을 완벽하게 만든다. 실리콘밸리는 좋은 아이디어가 태어나는 곳이 아니다. 그런 아이디어가 걸음마를 배우는 곳이다.
노승영 옮김. 512쪽. 1만8천500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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