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전 감사원장, '헌법의 이름으로'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국은 선진적인 '헌법화'(憲法化) 사회가 됐다. 87년 헌법은 살아 있는 헌법이 됐고, 헌법재판 결과에 따라 시민의 작은 일상부터 국가적 대사까지 그 향방이 바뀌었다."
숭실대와 한양대에서 학생을 가르친 법학자로 법과사회이론연구회장과 한국공법학회장을 지낸 양건 전 감사원장이 국가를 지탱하는 최상위 법인 헌법 개념과 특징, 개헌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 '헌법의 이름으로'를 펴냈다.
저자는 우리나라 헌법사에서 분수령이 된 시점으로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1987년을 꼽는다. 1948년 제헌 헌법이 제정됐으나, 1987년 이전까지는 기본권과 권력구조 조항에서 위헌적 침해가 드물지 않아 헌법이 '반신불수' 상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 항쟁을 거치면서 헌법이 지닌 힘은 강화했고, 헌법은 민주주의를 공고화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권력을 사유화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국가 원수 자리에서 쫓아낼 수 있었던 원동력도 분명 헌법이었다.
그런데 헌법은 수학 법칙처럼 명료하지 않다. 예컨대 간통죄는 2015년 위헌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1990∼2008년에 네 차례나 헌법재판소에서 다뤄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재판관들이 똑같은 조문을 놓고도 해석을 달리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헌법이 규칙보다 원리가 많은 법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규칙은 '대통령 임기는 5년'처럼 시비를 명확히 가릴 수 있지만, 원리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같이 추상적이어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따라서 헌법은 조항 자체만으로는 알 수 없고 유권적인 헌법 해석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는 "헌법은 제정뿐만 아니라 해석과 적용 역시 매우 정치적"이라며 "헌법의 이름으로 치장된 그 논리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가 문제 될 뿐"이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헌법을 바탕으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끈 촛불항쟁, 건국절, 남북분단에 대한 견해도 제시한다.
그는 촛불항쟁을 혁명이나 저항권 행사로 간주하지 않는다. 법절차를 준수했다는 점에서 혁명이라고 할 수 없고, 당시 상황이 저항권 행사 조건인 '합법적인 구제 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 해석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시민 집회에서 국회 탄핵소추, 헌법재판소 탄핵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새롭고도 복합적인 주권행사"라고 평가한다.
건국절에 대해서는 "제헌 헌법 전문과 87년 헌법 전문이 모두 대한민국 건국 시점이 1919년인지 1948년인지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면서 "현실적 측면을 강조하면 1948년 건국론이 타당한 것으로 보이고, 명분적·이념적 측면을 중시하면 1919년 건국론에 기울게 된다"고 정리한다.
이어 건국 시점을 1919년과 1948년 중 어느 쪽으로 볼지는 법이 아닌 정치 문제이므로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헌법에서 상충한다는 지적이 있는 통일 조항과 영토 조항을 충족하려면 '평화적 흡수통일'만이 가능하다면서 평화공존과 적대적 대립이 혼재된 남북 관계를 고려하면 "통일 문제는 법을 넘은 영역처럼 보인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정치권의 주요 논쟁거리인 개헌 필요성도 냉정하게 분석한다. 개헌이 필요하다면 잘못된 정치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원인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헌정의 난맥상이 제도 자체 문제점보다 운영에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각종 폐해를 낳은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사법기관의 대통령 견제권 강화, 대통령 사면권 제한, 감사원 독립, 인사제도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시종일관 헌법이 '펄펄 살아 있는 법'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헌법이 해석 과정을 거치며 새롭게 형성된다는 점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관한 헌법 조문을 바꾸는 것보다 권위주의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새로운 헌법질서는 헌법전 조문 변경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필요한 개헌은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 헌법질서의 새로운 정립이며, 그 방향에서의 꾸준한 실행이다."
사계절. 620쪽. 2만6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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