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언론, 전문가 인용 보도…"아직 평화에 대한 희망 있다"
(싱가포르=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싱가포르 언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북미 정상회담 취소는 최근 거친 언사로 미국을 비판한 북한에 대한 일종의 벌주기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현지 일간 더 스트레이츠타임스는 25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소식을 1면과 8∼9면에 걸쳐 상세하게 보도하면서 이 같은 전문가들의 분석을 함께 실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라자나트남 국제연구소의 그레이엄 옹-웹 연구원은 "이는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한 일종의 벌주기"라고 진단했다.
북한은 '판문점 선언' 이후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지난 13일 '안보 사령탑'인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언론인터뷰를 통해 북한이 폐기한 핵·미사일 장비와 물질을 미국(테네시주 오크리지)으로 가져오는 방식을 언급하자 돌변했다.
북한은 볼턴의 이 발언을 이른바 '리비아 모델'로 받아들이며 북미회담 무산 가능성을 거론하고, 한미 연합공중훈련을 문제 삼아 예정된 남북고위급 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또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선(先) 핵 폐기-후(後) 보상'으로 해석되는 펜스 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횡설수설' '무지몽매한 소리'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 등의 원색적인 표현으로 비난했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 신문에 "(회담 취소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트럼프 방식의 벌주기"라며 "이는 이번 회담을 몹시 기대했던 김 위원장에게 상처를 줬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핵실험장을 막 폐쇄한 상태였다. 북한은 지렛대를 잃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회담 취소는 (북미 간에) 소통 방식과 문화적인 차이가 있으며, 북한이 전한 메시지의 행간을 미국이 읽지 못했다는 것도 보여준 것"이라며 "비록 북한은 리비아식 모델에 분개했지만, 트럼프와의 만남을 원한다는 신호를 지속해서 보냈다. 최근 며칠간 북한이 내놓은 강경 메시지는 협상의 여지를 찾기 위한 것이었지만 트럼프의 자존심은 이를 수용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따라서 이번 일을 계기로 북한 역시 '21세기식' 소통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교수는 "트럼프는 북한과 똑같은 예측불허의 벼랑 끝 전술을 써왔다. 하지만 그것은 회담을 취소할 만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비판하기는 쉽다. 트럼프의 귓가에 대북 강경 대응을 속삭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난할 수도 있고, 북한에 과도하게 거칠게 대응한 미국을 비난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이 너무 나갔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를 어렵게 한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의 림 타이 웨이 박사는 "회담이 취소됐지만, 평화에 대한 희망은 있다. 김 위원장에게 마음 바뀌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나 편지를 해달라고 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서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며 "따라서 아직 평화에 대한 희망은 있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회담이 취소된 것은 유감이지만 북미 양측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에 예상됐던 일"이라며 "이제 핵무장을 한 북한을 용인할 수 없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압박 강도를 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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