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된 포퓰리즘 세력, 더 이상 변명·비난 안 통해"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출범 초읽기에 들어간 이탈리아 포퓰리즘 연정을 둘러싸고, 국내외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가운데, 이탈리아의 전·현직 총리들이 새 정부를 향해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파올로 젠틸로니 총리는 25일 총리실 직원들에게 한 고별사에서 이탈리아가 다시 위기로 추락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반체제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동맹'으로 구성된 연정에 분별력 있는 국정 운영을 당부했다.
젠틸로니 총리는 "지난 5년 동안 이탈리아가 했듯이 미끄러운 비탈을 올라가는 일은 쉽지 않다"며 "하지만, 불행히도 길을 벗어나는 것은 5년이 걸리는 게 아니라 단 몇 개월, 때로는 몇 주만에도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2016년 12월에 총리직에 오른 젠틸로니 총리는 지난 5년 간 국정을 책임졌던 중도좌파 민주당 소속이다. 민주당 집권 시절 이탈리아는 유럽연합(EU)의 요구를 수용해 연금 개혁, 노동 개혁, 재정 적자 삭감 등의 정책을 폈다.
이런 구조 개혁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며 이탈리아 경제는 오랜 역성장에서 벗어나 2016년부터 소폭이나마 성장세로 돌아섰고, 하늘높이 치솟던 실업률도 소폭 하락세로 반전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 체감하기 어려운 더딘 경제 성장, 지중해를 건너 쏟아져 들어온 수 십 만명의 난민 행렬에 지친 대중은 지난 3월 총선에서 기득권 심판과 '이탈리아 우선'을 외친 포퓰리즘 세력에 표를 몰아줬다.
젠틸로니 총리는 이날 고별사에서 "국정 운영에 있어 책임과 노력, (올바른)자질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것이 내가 이끈 정부를 며칠 내로 대체할 차기 정부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젠틸로니 총리에 앞서 총리를 지낸 마테오 렌치 전 총리 역시 지난 24일 지지자들에게 보낸 소식지에서 "이제 오성운동과 동맹은 권력을 잡았고, 기득권이 됐다"며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변명하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렌치 전 총리는 이어 "이제 소리만 지르는 시간은 끝났다. 이제 그들은 통치를 해야 한다"며 "그들이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들과 우리 모두에게 행운을 빈다"고 꼬집었다.
렌치 전 총리는 지난 3월 총선에서 집권 민주당이 19%에 불과한 득표율로 참패를 당하자,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민주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를 이끄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도 오성운동-동맹의 연정에 우려를 나타내며 FI는 연정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성운동에 의해 이탈리아를 망친 '적폐'로 지목된 채 연정 협상에서 배제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오성운동과 같은 정당과 우리는 양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이 발표한 국정운영안 역시 대중의 기대치에 크게 미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오성운동과 동맹이 타결한 연정 협상안은 반은 순진한 몽상을 담았고, 나머지 반은 사회간접자본부터 사법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와 이탈리아인들을 걱정시키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오성운동을 일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집합체라고 폄하하며, 오성운동 정치인들이 자신이 운영하는 미디어그룹 메디아세트에 입사할 경우 변기 청소밖에 시킬 일이 없다고 깎아내린 바 있다.
한편, 이날도 재정 지출 확대와 유럽연합(EU)과의 엇박자를 예고한 차기 정부에 대한 우려로 이날도 금융 시장은 요동쳤다.
시장 심리의 지표로 여겨지는 이탈리아와 독일 국채 10년물 스프레드(금리차)는 한때 217bp까지 치솟아 2013년 12월 이래 4년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스프레드는 높을수록 시장이 불안함을 의미한다.
밀라노 증시의 FTSE MIB 지수도 1.54%나 빠졌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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