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블랙리스트' 3차 조사 결과 관련자들 형사조치 안 하기로
"동료 판사 면죄부" vs "과거 벗어나 미래로"…법원 내부 의견 분분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3차 조사 결과를 두고 법원 내에서 엇갈린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를 사찰한 문건이 추가로 발견됐음에도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한 데에 격한 반응이 나오는가 하면 일각에선 이제 논란을 종식하고 조직을 추스르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도 강하게 제기된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전날 그간의 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하려 하거나 특정 법관을 뒷조사한 정황을 담은 문건이 추가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다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의혹 관련자들에 대한 고발 등 형사상 조치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고, 그 밖의 사항은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조사단의 입장이다. 조사단은 대신 행위자별로 징계권자나 인사권자에게 해당 내용을 전달하기로 했다.
이 같은 조사단의 결정을 두고 사찰 피해자로 알려진 차성안(사법연수원 35기) 판사는 "동료 판사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차 판사는 이날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특조단이 형사고발 의견을 못 내겠고, 대법원장도 그리하신다면 내가 국민과 함께 고발하겠다"고 밝혔다.그는 "행정부에서 이런 식의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조직적 사찰행위가 일어나 직권남용 등의 죄로 기소됐을 때 모두 무죄를 선고할 자신이 있느냐"면서 "잘못을 저지른 판사가 동료라고 이런 식의 면죄부를 주면 누가 법원 재판을 공정하다고 받아들이겠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조직에 사법개혁을 기대할 것도 없다"며 "법원을 상대로 국가배상청구로 정식으로 대응해 드리겠다"고도 적었다.
그는 더 나아가 "판사와 변호사 독립에 대한 UN 특별보고관에 대한 진정 절차도 있다"며 UN에 진정을 제기할 의향도 있음을 내비쳤다.
A 판사는 차 판사의 글에 "동참한다"는 의견을 달며 가세했다. A 판사는 "주요 인물들은 다 퇴직했고 징계시효도 도과했다"면서 조사단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한편에선 이번 조사 결과가 지난 2차 조사 결과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만큼 더 이상의 논란은 불필요하다는 의견들도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이 대부분 아니냐"라며 "기존 결과와 다를 게 없는데 이런 식으로 관련자들을 망신주게 하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도 "보고서 작성 등에 관여한 사람들을 모두 대면 조사한 결과 실제 실행단계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는 게 드러나 고발까지는 못 한 것으로 보인다"며 "조사단이 징계권자에게 내용을 전달하겠다고 했으니 향후 조치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암호가 설정된 파일까지 조사해서 나온 결과인 만큼 이제는 법원 조직이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다.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서 편 가르기를 할 것인가"라며 내홍 수습에 무게를 실었다.
이 부장판사는 또 "보고서 결과를 보면 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하려 시도했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오거나 실행이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부적절한 행위는 뼈아프지만, 일선 법관들이 소신껏 판단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은 희망적"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차장 등이 이미 시민단체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만큼 진행 경과를 차분히 지켜보자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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