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대상 수상 이후 롱 퍼터 금지로 부진하다가 3년 만에 우승
(인천=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이런 말씀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그날 역전패하고 아내하고 같이 울다가 아들을 얻었거든요."
우승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이태희(34)가 울먹이며 던진 농담에 기자회견장에 폭소가 터졌다.
이태희는 27일 인천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총상금 15억원)에서 우승했다.
2015년 6월 넵스 헤리티지 이후 약 3년 만에 투어 2승째를 거둔 이태희는 우승 상금 3억원과 부상 제네시스 G70 차량, 올해 10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CJ컵, 2019년 2월 제네시스오픈 출전권까지 거머쥐며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
특히 바로 전날인 26일이 생일이었던 이태희는 이날 5타 차 역전승을 거둔 뒤 부모님과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1년 전 생일은 그에게 악몽이었다.
카이도 드림오픈에서 4타 차 단독 선두로 맞은 최종 라운드를 연장전 끝에 패하면서 준우승에 그쳤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홀 더블보기로 연장에 끌려들어 간 안 좋은 기억을 묻자 이태희는 "그때도 대회 기간에 제 생일이 있어서 축하도 받고, 우승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며 "그런데 역전패를 당해 집에서 와이프와 함께 많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지만 그때 아기가 생겼다"며 "그래서 2월에 태어난 아들 서진이가 100일이 됐고 오늘 우승까지 했으니 그때 우승 못 한 것은 괜찮다"고 이날도 울다가 웃었다.
"아이를 보느라 이날 대회장에 오지 못한 아내(권보민 씨)도 '그날 오빠가 우승했으면 우리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더라"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파4인 14번 홀에서 드라이버로 원 온에 성공, 버디를 잡으며 단독 선두에 오른 그는 "그때 제가 1등이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버디를 잡기 위해서 공격적으로 나갔다"며 "그런데 그린에 가서 보니 드라이버를 잡으면 안 되는 곳이었다"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태희는 "조금이라도 샷이 잘못 맞았으면 보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홀인데 운 좋게 공이 똑바로 가면서 그린에 올라갔다"고 행운이 따른 샷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2015년 KPGA 대상을 받았지만 2016년부터 2년간 우승 소식 없이 고전했다.
롱 퍼터를 쓰던 이태희는 "대상을 받은 이후 골프 규정이 바뀌어 롱 퍼터가 금지됐다"며 "올해 4월 개막전에 스윙 코치 조언으로 '이보다 더 퍼트가 안 될까' 하는 마음에 조금 긴 퍼터(36인치)를 집게 그립으로 잡는 변화를 준 것이 주효했다"고 승리 원인을 분석했다.
부진했던 2년간 마음고생을 달래준 것은 역시 아내였다.
그의 아내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골프 선수들의 매니저를 맡아봤다.
이태희는 "장하나, 전인지 등 유명 선수들의 매니저였는데 저와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다"며 "다른 선수들의 뒷바라지를 하려면 정작 제 뒷바라지는 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고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2년간 부진하고, 외국 퀄리파잉스쿨도 안되면서 자신감을 잃었는데 아내가 '골프 1, 2년 할 것도 아니고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말해준 것이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놨다.
시즌 개막에 앞서 부상 없이 많은 대회에 나가서 전 경기 예선 통과를 목표로 잡았다는 이태희는 "감도 괜찮고 첫 우승도 나왔기 때문에 1, 2개 대회에서 더 우승하면 좋겠다"고 상향 조정된 목표치를 공개했다.
올해 10월과 2019년 2월 PGA 투어 대회 출전 자격도 얻은 그는 "누구나 꿈꾸는 무대"라며 "저는 잃을 것이 없는 선수니까 신나고 재미있게 치고 오겠다"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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