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맞선 부조리, 사회비판·시대고민 녹여내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지난 1월 방탄소년단과의 인터뷰 때였다. 왜 음악을 하냐고 묻자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화두를 던지고 싶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방탄소년단이 27일(현지시간)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한국 가수가 우리말로 부른 노래가 빌보드 1위를 한 건 한국 대중음악 100년 역사상 최초였고,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된 음반이 이 차트 1위를 한 건 12년 만이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1위가 목표"라고 기자간담회에서 공언한 지 사흘 만에 날아든 소식이었다.
이들의 노래는 방탄소년단이 음악을 하는 이유와 닮았다. 행복해지려고 치열하게 고민한다. 지난 5년간 발표한 앨범과 온라인 음악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한 비정규 음원에는 숱한 좌절의 흔적이 나이테처럼 겹겹이 쌓여있다.
멤버 슈가는 믹스테이프 수록곡 '치리사일사팔'에서 '성공이 궁해? No 난 그냥 돈이 궁해/ 밤에는 연습하고 새벽엔 알바하고/ 그렇게 지친 몸 끌고 학교로 가 잠만 자던 내가 20살이 돼 버렸네'라고 회고한다. 노래 제목은 그가 대구에서 등하교할 때 타던 버스 번호(724)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돼 상경한 뒤 탄 버스 번호(148)를 합친 것이다.
이처럼 힘들어봤기에 또래의 결핍을 잘 안다. 그래서 여느 아이돌의 노래처럼 대책 없이 사랑 타령만 하거나 신나게 놀자고 꼬드기지 않는다. 대신 음악으로 부조리와 싸운다. 입시 경쟁과 청년을 울리는 열정 페이, 수저계급론 등 아이돌 음악이 거리를 두는 시대 현실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우릴 공부하는 기계로 만든 건 누구?/ 일등이 아니면 낙오로 구분'('N.O'), '난 육포가 좋으니까 6포 세대/ 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쩔어'), '알바 가면 열정페이 (중략) 이건 정상이 아냐/ 아 노력노력 타령 좀 그만둬'('뱁새')….
위로도 잊지 않는다.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 내게 주어진 운명의 증거'(DNA)라며 너와 나의 관계가 남녀관계를 넘어선 차원의 것이라고 유대감을 쌓는다.
우리도 중소 기획사가 배출한 별 볼 일 없는 사내애들이었다고, 너희의 아픔을 공감한다고 다독인다. '희망이 있는 곳엔 반드시 절망이 있네'('바다'), '애쓰지 좀 말어 져도 괜찮아'('불타오르네'), '꿈이 없어도 괜찮아, 멈춰 서도 괜찮아'(낙원)라고 무한경쟁에 내몰린 또래의 등을 두드린다. '널 가두는 유리천장 따윈 부숴'('낫 투데이')라며 패기 있게 외친다.
그래서 이들의 자랑은 멋있다. 적지 않던 안티팬에게 조롱을 되돌려줘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마이크 드롭'에서 이들은 성과를 이렇게 과시한다.
'망할 거 같았겠지만 I'm fine, sorry. 니 현실을 봐라 쌤통. 지금 죽어도 난 개행복. 트로피들로 백이 가득해. 더 볼 일 없어 마지막 인사야. 할 말도 없어 사과도 하지 마'
방탄소년단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18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신곡 '페이크 러브'(FAKE LOVE) 무대를 선보이며 원곡 가사 일부를 바꿔 불렀다.
우리말 '니가', '내가'가 인종차별 금기어인 '니거'(Nigger·흑인을 비하하는 속어)로 혼동될 것을 우려한 선택이었다. 이제 방탄소년단의 고민은 국경을 넘어 '사람'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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