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성장 위한 환율 이용이나 특정수준 고집은 위험…유연해야"
(세종=연합뉴스) 이 율 기자 =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29일 "우리 외환시장은 그 폭이 얇고 좁아서 쏠림현상이 매우 심하다"면서 "전 세계에서 변동성이 가장 크고 경기 순응적인 외환시장을 갖고 있는 나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명동 은행회관에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한국금융연구원, 아시아금융학회가 공동주최한 '한미 환율협상과 외환시장 안정정책의 과제' 정책 세미나 기조강연에서 이같이 밝혔다.
신 전 위원장은 "우리 경제구조는 정유, 조선 등과 같이 대규모 외환이 한꺼번에 거래되는 업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외환시장이 이를 흡수할 수 없다"면서 "(환율 변동성이 큰 만큼) 환율 움직임의 일방향성을 개선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태생적으로 환율의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자칫 국제 투기세력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외환당국이 적절히 시장에 시그널을 줘야 하고 필요할 때에는 과감하게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환시장 개입은 1997년 홍콩의 사례에서와 같이 단기에 과감하고 충분하게 해야 하며, 이는 외환당국의 전문성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외환시장 개입내역을 공개해야 하는 만큼 일본 재무성과 같이 우리 외환 당국도 주요 국가의 외환 당국과 협조채널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전 위원장은 "국제수지가 흑자인 나라는 예외 없이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압력을 받아왔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라면서 "미국은 역사적으로 환율과 함께 관세나 서비스시장 개방을 함께 요구하는 전략을 견지해온 만큼, 통상교섭본부가 아닌 기획재정부가 중심이 돼 포괄적 대응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주 끝난 제2차 미·중 무역협상의 중국 측 대표단을 보면 경제부총리를 단장으로 인민은행장, 재정부, 상무부, 농업부 부부장들이 대거 참석한 것을 참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또 환율협상의 경우 양자협의보다는 주요 20개국(G20)이나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을 활용한 다자간 협의를 통해 환율에 대한 원론적 합의를 끌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신 전 위원장은 "정책조합의 수단 중에서 환율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면서 "물가나 성장, 고용을 위해 인위적으로 환율을 이용하는 것은 위험하며, 더욱이 정치적 목적이나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시정책에서 환율은 주어진 외생변수로 봐야 하며, 환율정책은 환투기세력에 대처하고 외환시장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환율의 오버슈팅을 막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급격한 환율 변동은 그것이 절상이든 절하이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다른 경제요인보다 크고, 많은 경우 금융위기나 경기침체로 연결됐다"면서 "환율은 움직이는 목표로, 특정 수준을 고집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며 유연한 환율정책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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