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체들 한식 넘어 신메뉴 봇물…'외식의 내식화' 가속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서울 성동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32·여)씨는 얼마 전 남편과 쌀국수를 먹으려 밖을 나섰다가 그냥 가까운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박씨가 손에 집은 것은 4인분에 1만3천여원하는 쌀국수 제품. 서울 시내 음식점에서 쌀국수 한 그릇에 1만원이 넘는 점을 고려하면 3분의 1 가격에 한 끼를 때운 셈이다.
박씨는 "외식하는 기분은 내지 못했지만, 훨씬 가격이 싸고 남은 것은 다음에 또 먹을 수 있어서 경제적이라고 생각했다"며 "어차피 쌀국수는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는 요리라는 점에서 집에서 먹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6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최근 생활물가 상승과 경기 불황 등으로 얇아진 지갑을 겨냥해 가정간편식(HMR·Home Meal Replacement)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이벤트'가 아닌 일상 식사에는 씀씀이를 줄이면서 맛도 챙기자는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족'이 늘어난 탓이다.
링크 아즈텍에 따르면 레스토랑 메뉴의 대명사인 스테이크류 간편식(냉동 양식반찬) 시장 규모는 2016년 129억원에서 지난해 202억원으로 커졌다. 올해 1∼3월에만 48억원 규모로 집계돼 지난해 같은 기간 42억원보다 6억원이 올라갔다.
냉동 피자 시장은 2016년 270억원에서 지난해 890억원으로 무려 3.29배나 '껑충' 뛰었다. 올해 1∼3월 시장 규모는 3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00억원보다 50%나 성장했다.
핫도그 역시 2016년 340억원에서 지난해 430억원, 지난해 1∼3월 98억원에서 올해 같은 기간 120억원으로 성장세를 보였다.
CJ제일제당의 간편식 브랜드 '고메'는 지난해 연 매출 1천억원대를 달성하더니, 올해는 연간 매출 2천억원으로 목표치를 2배나 올려 잡았다. 목표를 달성한다면 1년 만에 매출이 100%나 껑충 뛰게 되는 셈이다.
이 브랜드는 2015년 12월 처음 선보인 이후 지난달 2년 5개월 만에 누적 매출 2천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고메는 한식 제품을 선보이는 '비비고'와는 달리 스테이크, 치킨, 스낵, 피자 등 주로 외식으로 맛보던 메뉴 위주로 내놓는 간편식 브랜드다. 이에 따라 함박스테이크 육즙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자 겉을 먼저 빠르게 익힌 후 속을 천천히 익히는 등 실제 셰프의 조리법을 따라 만들었다.
CJ제일제당은 "고메 제품은 모두 외식으로 즐기던 수준 그대로 셰프의 노하우를 담아 전문 식당의 맛을 가정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며 "함박스테이크 제품의 경우 2016년 출시 첫해 11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지난해에는 280억원어치를 팔았다. 출시후 누적 매출은 올해 4월 말 현재 500억원에 600만 봉 이상을 기록 중이며, 연 매출 350억원 달성이 목표"라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냉동 양식 반찬 시장에서 지난해 기준 78%의 점유율을 보인다. 이어 롯데푸드 9%, 하림과 오뚜기가 각각 5%로 뒤따르는 모양새다.
이 같은 '외식의 내식화' 바람은 비단 한 끼를 때우는 식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주점에서 술과 함께 즐기는 안주도 간편식 제품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링크 아즈텍에 따르면 냉동 안주 간편식 시장 규모는 2016년 76억원에서 지난해 494억원으로 무려 6배나 커졌다.
대상 청정원은 2016년 안주 간편식 브랜드 '안주야(夜)'를 선보인 이래 지난해에는 매출 6배 신장에 힘입어 관련 시장 68%를 점유하고 있다.
대상 청정원은 "소비자가 가정간편식에 기대하는 가치는 '직접 요리하지 않는 간편함' 정도로 소비자가 지갑을 여는 '가격 상한선'이 낮았다"며 "이에 따라 닭발이나 막창 등 전문 음식점이 아니면 접하기 어렵고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메뉴로 시선을 돌렸다"고 설명했다.
안주야는 '논현동 포차스타일'을 콘셉트로 무뼈닭발, 불막창, 매운껍데기를 비롯해 직화곱창, 마늘근위, 주꾸미볶음 등 다양한 안주 제품을 내놓고 있다. 닭발 해체 전문 직원을 두고 일일이 손으로 뼈와 살을 발라낸다는 설명이다.
풀무원 역시 쌀국수, 파스타, 라멘(일본 라면), 냉면, 냉동밥 등 다양한 간편식으로 소비자를 만나고 있다. 특히 '생가득 평양 물냉면'은 남북관계 이슈를 타고 남북정상회담 이후 매출이 3배나 뛰기도 했다.
풀무원은 "냉동밥은 현재 과거 볶음밥에서 나물밥을 거쳐 비빔밥의 형태로 진화 중"이라며 "제조사 입장에서야 볶음밥이 가장 만들기 쉽지만, 소비자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어 더 고급 제품을 내놔야 하는 추세다. '소고기 버섯 비빔밥'은 올 1분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173%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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