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정치불안에 금융시장 '패닉'…중앙은행총재 "신뢰상실 위기"(종합)

입력 2018-05-30 01:04   수정 2018-05-30 20:48

伊정치불안에 금융시장 '패닉'…중앙은행총재 "신뢰상실 위기"(종합)
스프레드, 한때 320bp까지 상승…주가 폭락 지속
"시장이 포퓰리즘 정당에 표 주지 않게 교훈 줄 것" EU 집행위원 발언 논란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의 정정 불안이 금융 시장을 연일 강타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시장의 투자 심리를 보여주는 지표로 꼽히는 독일과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 차(스프레드)는 오전 한때 320bp까지 치솟았다.
밀라노 증시의 FTSE MIB 지수 역시 오전 한때 3% 넘게 빠지며 닷새 째 하락세를 이어가 작년 7월 이후 최저치로 추락했다. 특히, 은행주들이 4∼5% 이상 급락, 직격탄을 맞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유로존 탈퇴 가능성이 높은 포퓰리즘 세력의 기세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시장 불안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 정국은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동맹의 연정 출범 직전에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이 반(反) 유럽연합(EU) 성향이 강한 파올로 사보나의 경제장관 지명을 전격 거부하면서 또 다시 혼돈에 빠져들었다.

마타렐라 대통령이 사보나의 승인을 거부하자 포퓰리즘 연정의 총리 후보였던 주세페 콘테가 전격 사임했고, 마타렐라는 국제통화기금(IMF) 고위관료 출신인 카를로 코타렐리를 임시 총리로 지명해 정국 수습에 나섰다.
IMF 시절 엄격한 재정 지출 감독으로 유명세를 탄 코타렐리 지명자가 꾸릴 새 내각이 의회 신임투표를 통과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것으로 관측된다.
코타렐리 지명자는 당초 이날 오후 마타렐라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내각 명단을 제출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조각을 아직 완료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30일 오전 다시 대통령궁을 찾을 예정이다.
연정 출범을 눈앞에 두고 집권이 좌절된 것에 격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두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과 '동맹'이 일제히 반대표를 던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총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당초, 일러야 9월 선거가 다시 실시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으나, 오성운동과 동맹이 가능한 빨리 재선거를 치를 것을 주장하고 있어, 선거 일정이 여름으로 앞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동맹의 지지율 상승세를 감안하면, 재총선 이후에는 포퓰리즘 세력의 기세가 더 강해져 두 정당의 합계 의석이 과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이탈리아를 바라보는 유럽연합(EU)과 시장의 우려를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 시장의 불안이 갈수록 증폭되자 이탈리아 중앙은행장도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이냐치오 비스코 이탈리아은행 총재는 경제 상황을 브리핑하는 연례 연설에서 "이탈리아는 '신뢰'라는 대체할 수 없는 자산을 잃을 위험에 바짝 다가서 있다"며 "경제 위기가 닥쳐 자산 가치 상실이 예상될 경우 투자자들이 앞다퉈 떠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스코 총재는 "이탈리아의 운명은 유럽의 운명과 일치한다"며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새 정부가 EU에 동조하는 경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독일 국적의 귄터 외팅거 EU 예산담당 집행위원이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융 시장 불안이 이탈리아인들이 포퓰리즘 세력에 투표하지 않도록 설득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소식에 이탈리아 정치인들이 분개하고 있다.
이탈리아 극우정당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이런 발언은 이탈리아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으로, 패권과 통제에 대한 독일의 욕망을 드러낸다"고 주장하며, 외팅거 집행위원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했다.
안토니오 타이아니 유럽의회 의장 역시 "이탈리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자유롭게 투표하는 시민들과, 그들을 대표하는 국가 기관"이라며 "이탈리아인들의 의지를 존중해줄 것을 모두에게 촉구한다"고 말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총선 재투표가 유로화와 EU에 대한 사실상의 국민투표 성격을 띨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와중에 나온 외팅거 위원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힐난하며 파문 진화에 나섰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모든 EU 관계자들에게 (이탈리아)유권자들을 존중할 것을 호소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이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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