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들 "고정관념 깬 방탄소년단 배우자…TF 꾸리기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빌보드 정상' 그룹인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는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방탄소년단 케이스가 '해프닝'이 아닌, '모델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국인 멤버 없이 한국어로 노래하는 팀으로서, 언어 장벽을 뛰어넘는 보편타당한 메시지와 좋은 콘텐츠를 통해 K팝이 고유한 장르로 진화하는 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와 싱글 차트인 '핫 100' 10위를 차지하며 가요사에 새 장을 연 방탄소년단은 쉽사리 깨기 어려운 기록으로 '대형 롤모델'이 됐다. 증권가에선 빅히트 기업 가치가 1조 원이 훌쩍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요계에선 방탄소년단 성공을 분석하고 배우자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 유명 기획사는 TF(태스크 포스) 팀까지 꾸렸다. 가요 관계자들 분석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의 '비범한' 행보 뒤에는 K팝 시장의 고정관념을 깨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 메시지 보편성·팝 트렌드 읽은 장르 융합 = 방탄소년단 음악의 강점은 메시지의 보편성과 팝 시장 트렌드를 읽은 장르의 융합이다.
방탄소년단은 학교, 청춘,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의 연작 앨범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완결성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다.
음악 속 메시지는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여느 K팝 그룹보다 광범위하다. 가깝게는 자신들 이야기인 청춘의 성장통부터 사회 이슈, 기성세대와 위계질서에 대한 비판까지 아이돌 가수들이 금기시하는 영역을 아울렀다. 때론 '1Q84'와 '데미안',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등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이들의 가사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밀레니얼 세대가 공감할 보편타당성이 있다.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에선 '자신을 사랑하자'는 사람 중심의 화두를 꺼냈다. 이 시리즈 앨범인 3집 곡 '낙원'에서는 무한경쟁 사회에 내몰린 이들에게 '꿈이 없어도 괜찮아', '뭐가 크건 작건 그냥 너는 너잖아'라고 쓰다듬었다.
이런 메시지가 담긴 트랙은 소속사 프로듀서인 방시혁·피독 등과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다. 국내 유명 작곡가들은 팝 트렌드에 적확한 장르 '융합'을 높이 평가했다.
아이돌 그룹의 히트곡을 다량 낸 작곡가 신사동호랭이는 "유럽과 일본 작곡가들을 만나면 방탄소년단 음악을 듣고 '어떻게 이런 장르를 섞었지?'라고 놀라워한다"며 "한 곡 안에서 힙합을 베이스로 두고 트랩, 퓨처베이스 등을 섞고 여기에 서정적인 멜로디도 가미한다. 장르적 시도는 프로듀서들의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기발한 접근"이라고 말했다.
씨스타와 미쓰에이, 트와이스 등의 히트곡을 만든 작곡팀 블랙아이드필승의 라도는 "유행하는 악기 소스, 팝의 트렌드를 모두 읽고 있다"며 "루이스 폰시의 '데스파시토'와 카밀라 카베요의 '하바나' 등 라틴과 쿠바 계열 음악이 세계적인 인기인데, 이번 앨범의 '에어플레인 파트.2'는 라틴 팝 장르"라고 설명했다.
◇ 10대 문법 꿰뚫은 친근한 소통 = 이들 음악과 메시지 전파력은 유튜브와 SNS 등 뉴미디어 소통에 기반을 뒀다. 지난 1월 인터뷰에서 슈가는 "SNS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숨 쉬듯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세대'에 친숙한 플랫폼을 통해 친밀감과 접근성을 높인 점은 성공의 중요 포인트다.
개인 SNS 계정이 없는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팔로워 수는 약 1천500만명, 유튜브 채널 '방탄TV' 구독자 수는 약 850만 명·총 조회수는 13억5천만 회다. 트위터에서 이들의 언급량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캐나다 출신 팝스타 저스틴 비버 관련 트윗양을 합한 것의 2배인 5억여 회다.
데뷔 전부터 이들은 TV보다 온라인을 지향하며 방대한 콘텐츠를 쏟아냈다. 트위터에는 '셀카'부터 멤버들의 일상 및 활동사진과 영상들을, 유튜브에는 영상 일기인 '방탄 로그'나 활동 비하인드 영상인 '방탄밤' 등을 공개했다.
물론 SNS 소통이 이들만의 차별점은 아니다. 대다수 아이돌 가수는 SNS를 활용한다. 그러나 이들은 K팝 시장의 고정관념을 탈피한 운영 방식의 '묘미'를 보여줬다.
2000년대 기획사들은 K팝을 일군 선두 기업들의 시스템을 받아들여 과정 대신 '완성형' 콘텐츠만 공개했다. '우상'의 이미지를 장착한 가수들은 '풀 메이크업'에 '풀 착장'을 하고, 노래와 안무를 완벽하게 구사할 때 대중과 만났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무대에서는 완성도를 기하되, 온라인에서는 마치 과정을 보여주듯 소탈한 일상과 정제되지 않은 친근한 말투로 다가갔다. 입을 벌리고 곯아떨어진 모습도, 막 잠을 자고 일어난 듯 부스스한 얼굴도 개의치 않았다. 전략적이지 않더라도 '투 트랙' 접근이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문 씨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친구 같은 '친근한'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며 "방탄소년단이 10대를 끌어들였다기보다, 10대가 기다린 문법을 정확하게 꿰뚫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탄소년단의 SNS 소통 원칙은 "최대한 솔직하게, 진심을 담아서"이다. 멤버들은 인터뷰에서 '욕하지 않기', '개인 계정 만들지 않기', '음주 트윗 하지 않기', '노출 사진 올리지 않기', '심각한 엽사(엽기적인 사진)는 상대방 동의 없이 올리지 않기' 등을 자신들만의 '룰'로 꼽았다.
◇ 글로벌화 앞당긴 탈중심화 = 온라인 소통 연장선에서 볼 때 방탄소년단은 '한국 성공=해외 성공'이란 관념도 '착각'으로 바꿔놓았다.
그간 가요계는 "한국에서 성공해야 '글로벌'이 된다"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미국 시장에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도전한 원더걸스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 대한 학습 효과도 있었다.
마치 공식 패턴처럼 기획사들은 데뷔나 신보를 낼 때 모든 프로모션을 한국에 쏟아부었다. 가요 프로그램과 예능 출연 등 '얼굴 알리기'에 공들이는 것은 '필수 코스'였다.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중심이니 아시아권 진출을 하려면 국내에서 빛을 볼 때까지 '때'를 기다려야 했다.
반면, 방탄소년단은 방송보다는 온라인에 공을 들이며 광범위한 다국적 팬을 다졌다. 데뷔 초기 이들은 '별게 없는 중소 아이돌'로 '방송에 짤리기는 부지기수'('바다' 중)였지만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 탈(脫) 중심화한 걸음으로 글로벌화를 앞당겼다.
한 기획사 이사는 "해외에서 성공한 뒤 역으로 안방 시장에 돌아오는 방법이 쉽지 않아 한동안 그 꿈을 꾸지 않았다"며 "'글로벌이 된다'란 명제에서 볼 때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정상은 우리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에겐 이제 규모와 응집력 면에서 막강한 세계적인 팬덤 '아미'가 있다. 아미를 등에 업은 이들은 3집 컴백 무대를 국내가요 프로그램이 아닌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선보였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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