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 원전 번역한 유재원 한국외대 명예교수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그리스인 조르바'는 번역이 워낙 힘들어서 안 하려고 했는데, 기존에 나온 번역본을 보니 문제점이 많이 보여서 지적하다가 결국 직접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하게 됐네요. 원본을 정확하게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내 독보적인 그리스학 전문가인 유재원(68) 한국외국어대 그리스학과 명예교수는 3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문학과지성사) 원전을 번역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1946년 그리스어로 발표된 '그리스인 조르바'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현대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고, 한국에는 1975년 처음 소개됐다. 그러나 그리스어-프랑스어-영어-한국어의 삼중 번역을 거친 책이 다수 출간됐고, 최근에 나온 책도 그리스어-영어 번역본을 한국어로 옮긴 이중 번역이었다. 그리스어 원전을 직접 번역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의 어휘가 대단히 풍부하고 문장이 굉장히 까다로워요. 제가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혼자 좋아서 읽다가 10년 전부터 모임을 만들어 같이 읽었는데, 다들 '그럼 직접 번역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2년 전부터 번역에 들어갔죠."
이번 번역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작가 이름 표기다. 그동안 '니코스 카잔차키스'로 표기됐는데, 유 교수는 '카잔자키스'로 썼다.
"작가 이름이 영어로 'Kazantzakis'로 표기돼 'tz'가 우리말로 'ㅊ'이 됐는데, 우리말 발음과 표기로는 'ㅈ'이 맞습니다. 제가 지난 30년 동안 '카잔자키스'가 맞다고 얘기해왔는데, 다른 책들에서 이미 카잔차키스로 통용됐다고 해서 그걸 바꿀 순 없었습니다. 절대 양보 안 하겠다고 해서 출판사에서도 따라줬죠."
그는 기존 번역본에서 그리스 문화에 관한 내용이 제대로 옮겨지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특히 정교회에 관한 신학적인 배경이 많이 깔려있거든요. 작가 자체가 아주 영성이 컸고요. 이 작품에는 정교인이 아니면 건드리기 어려운 정서들이 있어요. 그것을 제가 오랫동안 정교회 (신자)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습니다."
또 기존 번역본들이 이야기의 초점을 '조르바'에게만 맞추고 화자인 '나'이자 저자인 작가의 이야기,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해서는 비중을 적게 둔 부분도 바로잡았다고 했다.
"원전을 보면 조르바란 인물과 '나'라는 인물이 거의 일대일 대등관계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비중이 5대 5인데요. 그동안은 조르바 쪽만 강조하고 저자에 대해서는 등한시해서 균형이 깨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속에서는 나라는 사람이 아예 등장도 안 하거든요. 나의 독백 같은 내용이 되게 깊이가 있는데, 그걸 이전 번역자들이 게을리 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번에 그런 부분을 제대로 살렸습니다."
이 소설만의 특별한 매력은 뭘까.
"자유의 찬가입니다. 조르바가 말하는 자유는 남한테 강요받지 않을 자유입니다. 자기가 누구에게 고용된다 해도 자유를 뺏는 명령은 절대 듣지 않겠다, 타협하지 않겠다는 얘기부터 시작을 하죠. 그는 자유는 목숨 걸고 지키지 않으면 가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조국이니, 애국이니, 정의니 이런 집착으로부터의 자유까지 얘기해요. 그런 걸로 싸워봤더니 인간이 더 잔혹해지고 악한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데 불과하다는 거죠. 그런 걸 때려치운 완전히 자유로운 삶, 니체가 말하는 '초인' 같은 사람으로 도달하는 과정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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