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기부자·농협은행 등에도 10∼60년 무상임대…"기간 너무 길어" 지적
뒤늦게 재산관리규칙 개정…기부자 무상임대 근거 규정 삭제
(서울=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 서울대가 삼성전자로부터 기부받은 건물을 40년간 공짜로 이 회사에 빌려주는 등 기부자들에게 학교 자산을 지나치게 오랫동안 무료로 임대하는 특혜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 측은 뒤늦게 기부자에게 건물 무상임대가 불가능하도록 규칙을 개정했지만, 이미 삼성전자 등 법인이나 개인 기부자들은 10∼60년 동안 관악캠퍼스 내 건물을 공짜로 사용할 권리를 보유한 상태다.
31일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이 서울대로부터 받은 '기부건물 및 기부자 사용현황'에 따르면 서울대는 삼성전자에 2017년부터 40년간 관악캠퍼스의 지하 2층·지상 10층 규모 '삼성전자 서울대연구소'를 무상임대했다.
삼성전자는 2012년 서울대와 연구소 건립협약을 체결, 건물을 지어 기부한 뒤 40년간 건물을 무상 임차하는 '기부채납'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부채납은 통상적으로 지방자치단체나 학교가 건물을 기부받은 뒤 기부자에게 일정 기간 무상임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 측이 연구소 유지 관련 세금까지 매년 내야 하지만, 연구소가 개소한 지 40년이 지난 2056년이 돼야 건물 사용 권리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다른 기부자들에게도 최장 60년까지 건물을 무상임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양인문학술정보관과 신양학술정보관을 기부한 개인에게 각각 60년과 57년, 자하연식당을 기부한 NH농협은행에 37년, 관정도서관을 기부한 관정교육재단에 25년 등 무료로 임대하고 있다. 기부자에게 무상 임대한 학교 건물은 모두 20곳이다.
일각에서는 기부자라고 해도 지나치게 오랜 기간 건물을 무상으로 빌려주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신식 건물을 지어 연구소로 활용한 뒤 건물이 노후한 시점에 학교에 건물을 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결국 학교는 자산가치가 없는 노후 건물을 사용할 것"이라며 "캠퍼스 공간과 자원을 낭비하면서 수익 창출 기회까지 상실했다"고 꼬집었다.
서울대는 지난 3월 뒤늦게 '재산관리규칙'을 개정해 기부자에게 건물 무상임대를 원천 금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2년 10월 시행된 기존 재산관리규칙의 임대료 면제 조건에는 '출연을 받은 재산에 대하여 출연자나 그 상속인, 그 밖의 포괄승계인에게 임대하는 경우'가 포함돼 있었다.
재산 임대 기간은 5년 이내를 원칙으로 하고 20년을 초과할 수 없게 돼 있었지만, 총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해 위원회 심의를 거쳤거나 별도의 협약이 있으면 임대 기간을 20년 이상까지 둘 수 있다는 예외 조항도 있었다.
서울대는 임대료 면제 조건에서 '출연자에게 임대하는 경우' 조항을 삭제해 기부자에 대한 무상임대 근거를 없앴다. 아울러 심의나 협약이 있더라도 일반 임대 기간이 10년을 넘을 수 없도록 규칙을 손질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기부자에게 무상으로 건물을 임대한다면 기부의 진정한 의미가 약해질 수 있다"며 "기부 의미를 살리고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기부자에 대한 무상임대를 막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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