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징용됐다가 고향 돌아갈 생각에 들떠 귀국선 탔지만 침몰
숨진 후 한일 양국 '냉대'로 일본 각지 전전…안식처 찾았지만 여전히 타국
(이키<일본 나가사키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추운 창고를 거쳐 다시 찾은 안식처는 여전히 고향 한반도가 아닌 일본의 땅이었다.
31일 추도 법회과 함께 한국인 징용희생자 유골 131위가 안치된 나가사키(長崎)현 이키(壹岐)섬의 사찰 덴토쿠지(天德寺).
사이타마(埼玉)현의 사찰 곤조인(金乘院)에 모셔져 있던 이 유골들은 지난달 중순 이후 창고나 다름없는 일본 정부 후생노동성의 시설에 있었다.
일본과 한국 시민단체들이 양국 정부에 간절히 탄원하는 등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유골들은 이날 새로운 절을 보금자리로 정했지만, 이들이 생전에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일본 전역의 절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 징용희생자의 유골 2천700여구 모두 각기 사연을 품고 있지만, 이날 덴토쿠지에 안치된 유골은 광복 후 귀국선을 탔다가 침몰해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한(恨)을 지니고 있다.
광복의 기쁜 소식이 들려온 1945년 가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타국 일본에 끌려와 죽을 고생을 하며 징용 생활을 버텨온 이들과 각자 사연을 품고 일본에 살아야 했던 한국인들은 가족들을 만날 꿈에 부풀어 귀국선을 탔다.
부산에서 가까운 규슈(九州)는 강제징용을 당해 끌려온 사람 등 고향에 돌아가려는 한국인으로 북적였다.
일본 정부가 마련한 귀국선이 턱없이 부족하자 이들은 돈을 모아 직접 고향에 돌아갈 배를 마련했다. 고향의 새로운 생활을 기대하며 꿈에 부푼 이들을 가득 태운 배는 한반도로 향했다.
하지만 그해 가을에는 유독 이 지역에 태풍이 많이 몰려왔다.
태풍을 만난 배는 강풍과 파도에 휩쓸려 침몰했고, 고향에 못 돌아간 한을 품은 시신들은 바다를 떠돌다가 이키섬이나 인근 쓰시마(대마도·對馬島)로 흘러들어왔다.
미츠비시중공업에서 징용공들의 작업반장을 했던 일본인 후카가와 무네도시(深川宗俊·사망) 씨가 고교 교사 등과 함께 1976년 86위를 수습했고, 이후 후카가와 씨 등 시민들의 압박을 받은 일본 정부가 1983년 45위를 찾았다.
이렇게 힘들게 수습한 유골들은 하지만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 곳곳을 전전하며 냉대를 받았다.
규슈 지역 여러 사찰을 옮겨 다니던 2003년 곤조인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 사찰마저도 더 이상 유골을 맡을 수 없다며 두 손을 드는 바람에 후생노동성 시설로 갔다.
이날 덴토쿠지에 안치된 유골들은 이키섬이나 쓰시마에 흘러왔다가 지역 주민들, 일본 정부에 의해 발굴된 것들이다.
이날 오전 추도 법회 참석을 위해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 종교인들과 함께 이키섬에 가는 길은 태풍이 심했던 1945년 가을과는 정반대로 고요했다.
이키섬행 페리를 탄 후쿠오카시 하카타 제2 페리 항구는 이키섬이나 쓰시마로 가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관광객들의 밝은 표정과 달리 일행들의 마음은 우여곡절 끝에 새 안식처를 찾았지만 여전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유골의 처지 때문에 무거웠다.
인근 지역 다른 항구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해방 직후 일제 식민지 시대의 유산으로 일본땅에 왔던 한국인들이 고향행 배를 타기 위해 몰려들었을 것이다.
곧 난파돼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될 것이라는 운명도 모른 채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벅차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해 착잡해졌다.
유골의 새 안식처인 이키섬은 쓰시마를 사이에 둔 채 부산에서 불과 100㎞ 떨어져 있다. 쾌속선이면 3시간이면 족히 부산에 닿을 수 있는 거리다.
그동안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던 유골들이 조난했던 73년 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고국의 코앞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이들 유골의 한국 봉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한국 정부 역시 일본에 유골을 돌려달라고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골의 귀향길은 다시 대한해협을 건너기 전 일본의 끝자락에 머물고 있다.
이날 추도 법회에서 참석자들은 유골들이 고향과 가까운 덴코쿠지에 안치된 것을 반기면서도 해방 72년을 넘긴 아직도 이들이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는 한뜻으로 안타까워했다.
추도 법회 후 니시타니 도쿠도(西谷德道) 덴코쿠지 주지는 유골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하며 울먹였다.
그는 "유골들은 그동안 일본 각지를 떠돌아다녔다"며 "덴코쿠지에 모시게 됐지만, 유골들이 하루라도 빨리 고향에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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