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싱가포르 고속철 등 대규모 사업 잇단 취소
'싱가포르 실효지배' 바위섬 영유권 분쟁도 양보…화해 제스처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말레이시아가 전 정권의 분식회계로 감춰졌던 막대한 국가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금 모으기 운동을 연상케 하는 대국민 모금을 벌여 눈길을 끈다.
31일 일간 더스타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정부는 전날 '타붕 하라판 말레이시아'(THM)란 이름의 신탁 펀드를 개설하고 국민으로부터 기부금을 받기로 했다.
마하티르 모하맛 신임 총리는 "정부 재정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게 되자 많은 이들이 기부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대국민 모금의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에는 최근 말레이시아의 20대 여성 시민활동가가 국가경제 회복을 위해 고통을 분담하자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모금을 진행한 것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달 25일부터 시작된 해당 모금에는 93명이 동참해 3천643달러(약 390만 원)의 자금이 모였다. 이 자금은 THM 펀드에 기부될 예정이다.
림관엥 말레이시아 재무장관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놓고 고심 중인 정부를 도우려는 말레이시아 국민의 마음과 염려, 지지에 정부를 대표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달 9일 치러진 총선에서 61년만의 첫 정권교체를 이뤄낸 말레이시아 신정부는 직전 정권이 1조873억 링깃(약 294조원)에 이르는 국가부채를 분식을 통해 7천억 링깃(189조원) 미만으로 속여 왔다고 폭로했다.
이에 새 정부는 총사업비가 600억 링깃(약 16조2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말레이∼싱가포르 고속철(HSR) 사업을 취소하기로 하는 등 대대적 재정긴축에 착수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30일 내각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400억∼450억 링깃(10조8천억∼12조1천억원)이 들 예정이었던 클랑 밸리 전철 3호선(MRT3) 공사 역시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총사업비(550억 링깃·약 14조8천억원)의 85%를 융자해 추진 중인 동부해안철도(ECRL) 건설 프로젝트 역시 수익성이 의심된다는 등 이유로 재검토 대상이 됐다
앞서 마하티르 총리는 이러한 대규모 건설 사업들만 정리해도 국가부채를 20% 가까이 줄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다만, HSR 사업의 중단과 관련해선 파트너인 싱가포르와의 협의가 관건이다.
마하티르 총리는 싱가포르에 지급할 피해보상금 규모를 5억 링깃(약 1천350억 원) 가량으로 추산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큰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가운데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가 실효지배 중인 바위섬 페드라 브랑카(말레이시아명 바투 푸테)의 영유권과 관련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재심 절차를 중단하기로 하는 등 싱가포르에 우호적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두 나라는 페드라 브랑카의 영유권을 두고 수십 년간 갈등을 빚어왔다.
ICJ는 2008년 이 섬이 싱가포르 영토라고 판결했으나, 말레이시아는 식민통치 시절 영국과 싱가포르 행정당국이 작성한 문건 등을 근거로 작년 초 재심을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말레이시아가 HSR 사업 중단 협상을 자국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승소 가능성이 희박했던 ICJ 재심 절차를 포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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