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 조작극 러 언론인 "살아남고 가족 지키는 게 목적이었다"

입력 2018-06-01 01:30   수정 2018-06-01 08:09

피살 조작극 러 언론인 "살아남고 가족 지키는 게 목적이었다"

바브첸코 기자회견…"구멍 뚫린 셔츠입고 돼지 피 발라 죽은 시늉"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우크라이나 보안 당국의 반정부 성향 러시아 언론인 총격 피살 자작극 특수작전에 참여했던 러시아 언론인 아르카디 바브첸코(41)가 3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작전의 상세한 내용을 공개했다.
바브첸코는 지난 29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건물 입구에서 괴한이 등 뒤에서 쏜 총에 맞아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 숨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튿날 우크라이나 보안당국은 바브첸코 피살이 그를 러시아 정보기관의 암살 위협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조작극이었다고 밝혔다.
바실리 그리착 우크라이나 보안국장은 이날 기자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특수작전을 통해 바브첸코에 대한 살해 시도를 차단했다"고 밝히면서 그를 회견장으로 초대했고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던 바브첸코의 등장에 모두가 경악했다.
바브첸코는 사건 이틀째인 이날 키예프에서 연 별도 기자회견에서 한 달 전 러시아 정보기관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우크라이나 보안 당국의 설명을 듣고 곧바로 작전 참여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안 당국과 조작극을 벌인 것에 대한 일각의 비판을 의식한 듯 "나의 목적은 살아남고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생각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작극을 위해 보안요원과 분장사들의 도움을 받았다면서 보안요원이 총을 쏴 구멍을 낸 셔츠를 입고 돼지 피를 몸에 발라 죽은 시늉을 했다고 소개했다.
그 뒤 사건 현장에서 구급차로 병원으로 실려 가 사망진단을 받았고 곧이어 영안실로 옮겨졌으며 그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자신의 피살을 보도한 TV 뉴스를 봤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작전 내내 작전이 실패할까 걱정했었지만, 영안실에서 그것이 완료되고 난 뒤 안도했다고 전했다.
바브첸코는 이날 하루 전 브리핑 때의 발언과는 달리 아내도 작전에 대해 사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피격된 뒤 가장 먼저 발견해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후송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바브첸코는 이날 "우크라이나 국적을 취득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행정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밝혀 러시아 국적을 포기하고 우크라이나 국적을 취득할 계획을 밝혔다.
그와 가족들은 현재 안전지대에서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날 바브첸코와 가족을 24시간 경호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종군기자로 활동한 바브첸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과 시리아 내전 개입 등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2016년 12월 페이스북에 러시아 국방부 소속 투폴례프(Tu)-154 항공기가 흑해 상공에 추락한 사건에 대한 글을 올리고, 러시아를 '침략자'로 묘사한 이후 살해 위협을 받고 2017년 2월 러시아를 떠났다.
체코와 이스라엘 등을 거쳐 키예프로 주거지를 옮긴 바브첸코는 우크라이나의 크림타타르족 방송 ATR TV의 앵커로 활동해 왔다.


cjyo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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