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모 드러난 러 언론인 피살 조작극…"킬러가 당국과 협조"(종합)

입력 2018-06-01 21:51   수정 2018-06-01 21:54

전모 드러난 러 언론인 피살 조작극…"킬러가 당국과 협조"(종합)

"살해 의뢰받은 킬러가 보안당국 찾아와 계획 폭로하며 특수작전 개시"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반정부 성향 러시아 언론인 아르카디 바브첸코(41) 총격 피살 조작극 사건의 전모가 우크라이나 당국의 발표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신변 위협 때문에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도피했던 바브첸코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건물 입구에서 괴한이 등 뒤에서 쏜 총에 맞아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 숨진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그 이튿날 우크라이나 보안당국은 바브첸코 피살이 그를 러시아 정보기관의 암살 위협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특수작전에 따른 조작극이었다고 발표했다. 당국의 브리핑장에는 건강한 모습의 바브첸코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 루첸코 우크라이나 검찰 총장은 31일 자국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바브첸코 피살극 이후 수사당국에 체포된 보리스 게르만이라는 우크라이나 기업인이 킬러를 고용해 언론인 살해를 주도했다고 밝혔다.
게르만은 러시아에 거주하는 모 인사로부터 바브첸코 살해 청부를 받고 우크라이나 동부 내전에 함께 참전했던 예전 동료 알렉세이 침발륙에게 살해를 주문했다.
청부 살해 대가로 4만 달러를 약속한 뒤 선금으로 2만 달러를 먼저 주고 나머지 2만 달러는 살해 후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게르만은 바브첸코 외에 약 30명의 살해 대상자 명단이 있다면서 이들 가운데 다른 2명의 살해도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살해 의뢰를 받은 침발륙이 우크라이나 보안국을 찾아가 계획에 대해 폭로하면서 당국의 특수작전이 시작됐다고 루첸코 총장은 설명했다.
당국은 바브첸코가 제거된 것으로 알려지고 나면 게르만이 킬러인 침발륙을 만나 전체 살해 대상자 명단에 관해 얘기할 것으로 기대했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약 2개월 전부터 특수작전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당국은 한 달 전 쯤 바브첸코를 만나 그가 청부 살해 대상이 돼 있음을 알리고 작전 동참을 요청했고 바브첸코도 이에 동의했다.
사건 당일 작전 계획에 따라 피살 조작극이 연출됐고 바브첸코는 총구멍이 난 셔츠를 입고 돼지 피를 몸에 발라 죽은 시늉을 하면서 구급차에 실려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이후 우크라이나 언론이 피살 소식을 전하고 당국이 이를 확인하는 발표를 하면서 대소동이 벌어졌다.
세계 주요 언론도 지난 3월 영국에서 벌어진 러시아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 독살 시도 사건과 유사한 일이 재현됐다며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뒤이어 영화 같은 반전이 펼쳐졌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사건 이튿날 모든 것이 특수작전에 따른 조작극이었음을 밝히고 바브첸코가 기자회견장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세계는 또 한 번 경악했다.
우크라이나 법원은 31일 청부 살해를 주도한 게르만에 대해 2개월의 구속을 허가했다.
게르만은 앞서 청부 살해 기도 배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비공식 펀드'가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그런 펀드는 러시아에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바브첸코 암살 시도에 러시아가 개입됐다는 모든 주장은 중상모략이며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종군기자로 활동한 바브첸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과 시리아 내전 개입 등 푸틴 대통령의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2016년 12월 페이스북에 러시아 국방부 소속 투폴례프(Tu)-154 항공기가 흑해 상공에 추락한 사건에 대한 글을 올리고, 러시아를 '침략자'로 묘사한 이후 살해 위협을 받고 2017년 2월 러시아를 떠났다.
체코와 이스라엘 등을 거쳐 키예프로 주거지를 옮긴 바브첸코는 우크라이나의 크림타타르족 방송 ATR TV의 앵커로 활동해 왔다.

cjyo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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