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미술관 '플랫랜드' 전에 나온 최선 '나비'
5년간 시민과 함께 완성한 잉크 그림…"북한인 숨도 담고파"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푸른 나비 수천 마리가 날아올랐다. 저들끼리 부딪쳐 날개가 부서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움직임이 세차다. 길이 28m에 이르는 흰 벽을 뒤덮은 나비들은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잉크를 불어 만든 그림이다.
"그때 우리나라에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났잖아요. 생명이 경시되는 일이기도 했고요." 1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만난 최선(45) 작가는 작품 '나비' 앞에서 2014년 4월 16일 비극을 떠올렸다.
작가는 세월호 참사 직후 가장 큰 아픔을 겪은 경기도 안산 중앙시장에 하얀 캔버스 천을 펼치고, 진청 잉크를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은 그 잉크를 '후우' 하고 불었다. 작가는 그렇게 즉흥적으로 만든 손바닥만 한 푸른 그림들을 "숨의 길"이라고 표현했다.
숨의 길은 차별이 없다. 길을 낸 이들 중에는 외국인 노동자도, 2살 어린이도, 팔십 노인도, 발달 장애인도 있다. 지금까지 안산과 부산, 시흥, 서울, 인천 등 전국을 돌며 기록한 그림들은 저마다 모양은 다르지만, 어느 하나 뒤처지거나 앞서나가지 않는다.
이렇게 모은 작은 숨들은 도시를 덥힌다. 금호미술관은 "작가는 공허한 예술의 평면이 아닌, 현재의 삶 속에서 누구나 공유하는 아름다움을 포착해 시각화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작가는 2015년 미국을 방문했다가 '이 프로젝트가 마지막에는 어땠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받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인과 북한인이 불어 만든 것들이 뒤섞였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림만으로는 어느 쪽 사람이 불었는지 알 수 없으니깐요. 요즘 한반도 상황을 보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요."
최선 '나비'는 이날 금호미술관 전관에서 개막한 '플랫랜드' 출품작 중 하나다. 금호미술관은 반세기 전 단색화가 아닌, 동시대 추상미술의 언어를 살펴보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작들은 '땡땡이 화가' 김용익 그림을 제외하고는, 추상미술 하면 떠올리는 기하학적 구도나 자유분방한 색채에서 벗어난다.
차승언 작가는 베틀로 직접 짠 '그림'으로 회화와 공예 경계를 넘나들고, 조재영 작가는 가구나 오브제로 보이는 모듈의 상호 작용을 펼쳐 보인다. 김규호, 김진희, 박미나 작가도 전시에 참여했다.
김윤옥 큐레이터는 "이들 작가는 흔히 언급되는 정신성이나 수행성이 아닌, 도시 혹은 사회 이면 이야기에 주목하면서 추상미술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플랫랜드' 전시는 9월 2일까지. 문의 ☎ 02-720-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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