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포퓰리즘 정권, 채무위기 불안감 불러
'이탈렉시트' 우려에 금융시장 '휘청'…스페인 혼란도 우려 요인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3위와 4위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최근 정국 혼란이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유럽발 위기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정치 불안에서 비롯된 이들 국가의 위기는 단기에 쉽사리 진정될 문제가 아닌 데다 이미 2010년 유럽 재정 위기로 인한 충격을 경험한 바 있기에 금융시장의 우려가 증폭됐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달 27일 대통령이 이탈리아의 유로화 탈퇴(이탈렉시트)를 주장하는 경제장관의 임명을 전격 거부했다. 포퓰리즘 연정 출범에 예기치 못한 급제동이 걸리자 금융시장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정부 출범이 무산된 뒤 다시 치러질 총선은 유로화와 유럽연합(EU)에 대한 국민투표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점이 시장의 불안을 부채질했다.
총선을 다시 치르면 유로존 탈퇴를 추진할 가능성이 큰 포퓰리즘 세력의 기세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 탓에 밀라노 증시의 주가는 연일 급락했다.
국채 금리가 치솟으면서 시장 투자 심리의 지표로 꼽히는 독일과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 차(스프레드)는 지난달 29일 한때 320bp(1bp=0.01%포인트)까지 치솟아 약 4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3주 전 130bp에 머물던 스프레드가 2배를 크게 넘어서는 수준으로 뛴 것이다.
같은 날 스페인에선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1년 만에 또 불신임 투표에 직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나란히 정정 불안을 겪었다.
이 때문에 유로존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퍼졌고 유로화 가치도 작년 7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다만, 이탈리아는 지난달 29일 이후 상황이 급반전, 반체제정당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동맹'이 다시 연정 불씨를 되살렸다. 결국, 총선 89일 만인 지난 1일 서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연정이 출범하면서 금융시장도 비교적 안정을 되찾은 모습이다.
오성운동은 집권 시 유로화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당론을 오랫동안 견지해왔으나 지난 3월 총선 직전 이를 폐기했다.
산업과 교역이 발달한 북부를 주된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는 동맹 역시 실제 유로존 탈퇴를 밀어붙일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이탈렉시트'가 실제로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관측이다.
더구나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탈리아인 10명 가운데 6∼7명은 유로존 탈퇴에 반대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이 지나갔는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EU의 긴축정책 반대, 기본소득 도입, 감세, 연금 수령연령 하향 등 재정 지출 확대를 꾀하는 오성운동과 동맹의 국정운영안에 그리스식 채무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내포돼 있다는 점에서다.
저소득층에 1인당 최대 780 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 소득 수준에 따라 15% 또는 20%의 단일 세율 채택, 2011년 도입된 연금 개혁안을 폐지함으로써 연금 수령연령을 다시 낮추는 방안 등 새 정권의 주요 공약만 현실화하더라도 연간 약 1천억 유로(약 127조원)의 나랏돈을 추가로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필요한 재원 조달 방안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공약이 실제 이행되면 파산 직전의 상태에서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 꼴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이탈리아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32%에 달하는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 이는 그리스에 이어 유로존 2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EU가 권고하는 채무 상한선 60%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경제 규모가 그리스의 약 10배에 달하는 이탈리아가 디폴트(채무 불이행)로 내몰리면 이는 EU 전체는 물론 글로벌 경제를 먹구름 속으로 몰고 갈 폭발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시장은 당분간 포퓰리즘 정부의 예산 운영 방안을 우려의 눈초리로 예의주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스페인의 경우 지난 1일 총리 불신임안 가결로 우파 국민당 정부가 실각하고 중도좌파 사회노동당(PSOE)의 페드로 산체스가 차기 총리가 됨으로써 요동쳤던 정국이 일단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신임 산체스 총리는 EU와 유로존을 강력히 지지하는 친(親) EU 성향으로 꼽혀 스페인이 이탈리아처럼 EU와 유로존에 타격을 입힐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소수 의석으로 내각을 이끌게 된 산체스 총리의 향후 조각 과정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스페인 정국은 다시 혼란에 빠져들 수 있고, 이 경우 국내외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불안감도 남아있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