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항공교통본부, 관제사 117명 첫 정신상담 결과
(세종=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항공관제사는 항공기의 운항을 관리하는 업무의 특성상 조금만 실수하면 자칫 큰 대형 참사를 일으킬 수 있어 정신건강을 각별히 챙겨야 하는 직업군이다.
국토교통부의 항공관제 기능을 관장하는 항공교통본부가 처음으로 소속 관제사의 정신건강 상태를 점검한 결과 20%가량이 우울증 등 정신건강 고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4일 국토부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국토부 항공교통본부(대구 소재)는 지난 4월 복지부 산하 국립부곡공원에 의뢰해 소속 관제사 117명을 상대로 정신건강 검진을 벌였다.
이 검진은 설문조사를 통해 우울과 스트레스, 불면 등의 정도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우울의 경우 그 정도를 측정하는 '한국판 역학연구센터 우울척도'(CES-D:Center for Epidemiological Studies-Depression Scale) 평가에서 24명(20.5%)이 경도 이상의 우울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도는 11명(9.4%), 중증도 이상의 우울은 13명(11.1%)이었다.
스트레스 자각 척도(PSS:Perceived stress scale) 평가에서는 '정상'은 30명(25.6%)밖에 되지 않았다.
경도 스트레스는 25명(21.3%), 중등도 스트레스는 21명(17.9%)이었고 중증 스트레스는 41명(35.0%)에 달했다.
검진자의 절반 이상이 경도를 넘어서는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어 스트레스 해소 대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병원 측은 진단했다.
불면증 정도를 측정하는 아테네 수면 척도(AIS:Athens Insomnia Scale) 평가에서는 41명이 참가해 24명(58.5%)이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측은 이런 결과를 토대로 관제사 117명 중 22명(18.8%)이 스트레스와 우울로 '정신건강 고위험군'에 속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이들 중 2명은 주기적으로 자살 충동을 겪는 것으로 파악됐다.
병원 측은 고위험군 대상자는 물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교육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병원은 6~7월 항공교통본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정신과 전문의의 정신건강 증진 교육을 벌일 예정이다.
또 정신건강 고위험군과 희망자를 상대로 전문의의 심층상담도 진행한다.
관제사들이 이렇게 심각한 수준의 스트레스와 우울에 시달리는 것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관제사 업무의 특성에다 모든 업무를 영어로 해야 하는 언어적 어려움도 더해지기 때문이다.
공항 관제탑 근무자는 공항에 수시로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이 얽히지 않도록 동선을 정리해야 하고, 영공을 관리하는 관제사는 시속 1천㎞ 이상 초고속으로 날아다니는 항공기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하늘길을 관리해야 한다.
이 모든 업무가 초(秒) 단위로 이뤄지고 자칫 실수했다가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가져오는 항공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이런 업무를 영어로 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영어 능력을 점검받으니 더욱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토부 관제 기능의 본부 격인 항공교통본부가 작년 말 신설되면서 인천에서 근무하던 인력이 대거 대구로 이전했는데, 이로 인한 환경변화도 스트레스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항공교통본부 관계자는 "마주 오는 두 항공기가 10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면 맞닥뜨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초밖에 되지 않는다"며 "순식간에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 항상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관제사의 20%가 우울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결과가 나와서 나도 적잖이 놀랐다"며 "관제 인력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항공교통본부는 본부 인력 117명에 대한 정밀 정신검진과 심리 상담 등의 결과를 보면서 다른 지역 관제사들에 대한 상담을 확대할지 검토할 예정이다.
현재 국토부 소속 관제 기능 인력은 622명이다. 이 중 현재 전국 공항에서 관제 관련 업무에 종사 중인 이는 56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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