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 오명 쭈타누깐, 스포츠맨십도 빛난 연장 접전 승리

입력 2018-06-04 09:43  

'새가슴' 오명 쭈타누깐, 스포츠맨십도 빛난 연장 접전 승리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김효주 좋은 샷에 박수로 응원
연장전 최근 3연승 거두며 부담감도 떨쳐내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에리야 쭈타누깐(23·태국)은 결정적인 순간 약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던 선수다.
지난해 6월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을 정도로 기량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수준이지만 팬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상적인 역전패를 수차례 당했다.
2013년 2월 태국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혼다 타일랜드에서 그는 2타 차 선두로 들어간 18번 홀(파5)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트리플보기를 기록, 다 잡았던 우승 트로피를 박인비(30)에게 넘겨줬다.
당시 우승했더라면 태국 선수 최초로 LPGA 투어 대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쭈타누깐은 12번 홀(파3)에서는 홀인원으로 기분을 한껏 내다가 믿기지 않는 역전패에 눈물까지 흘려야 했다.
18번 홀 두 번째 샷이 벙커에 빠졌고, 공이 벙커 턱 바로 아래에 깊숙이 박혀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하면서 불길한 기운이 흘렀다.
또 그린 뒤 러프에서 시도한 파 퍼트가 그린 위로 올라가지도 못했고, 1m 남짓한 거리의 더블보기 퍼트마저 실패했다.
동생의 우승을 축하해주려고 그린 주위에서 생수병을 들고 기다리던 언니 모리야 쭈타누깐은 축하의 물세례를 퍼붓는 대신 에리야의 눈물을 닦아줘야 했다.
2016년 4월 메이저 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에서도 쭈타누깐은 최종라운드 15번 홀까지 2타 차 선두를 달리다가 16번 홀부터 보기-보기-보기로 경기를 마치면서 결국 4위에 그쳤다.
4일(한국시간) 미국 앨라배마주 쇼얼 크리크에서 끝난 제73회 US여자오픈에서도 쭈타누깐은 믿기지 않는 대역전패를 당할 뻔했다.
최종라운드 9번 홀이 끝났을 때까지 2위 김효주(23)에 무려 7타나 앞서다가 이를 다 까먹고 연장전에 끌려들어 갔다.
10번 홀(파4) 트리플보기로 4타 차가 됐고, 이후 12번 홀(파4) 보기와 17, 18번 홀 연속 보기로 무너졌다.




미국골프협회(USGA) 주관 대회라 1차 연장이 서든 데스가 아닌 2개 홀 합산으로 진행된 것이 쭈타누깐에게는 행운이었다.
14, 18번 홀 합산으로 진행된 연장에서 쭈타누깐은 14번 홀에서 김효주보다 가까운 거리에 공을 보내고도 김효주가 먼저 6m 버디 퍼트를 넣는 바람에 궁지에 몰렸다.
후반 9개 홀에서 워낙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난조를 보인 탓에 연장 첫 번째 홀에서 김효주의 중거리 버디 퍼트 성공은 쭈타누깐에게 뼈아픈 결과였다.
하지만 TV 중계 카메라에 잡힌 쭈타누깐은 아쉬워하는 대신 '나이스 퍼트'라고 말하며 오히려 김효주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이후로도 쭈타누깐은 김효주의 좋은 샷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박수를 보내며 축하하는 스포츠맨십을 보여줬다.
물론 '매너의 스포츠'로 불리는 골프에서 상대의 좋은 샷에 함께 축하하고 기뻐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차례 대역전패의 아픔에 시달렸던 쭈타누깐으로서는 7타 차 리드를 날린 상황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기 쉽지 않았을 터다.
상대의 좋은 샷에도 흔들리지 않고 박수를 보내며 침착함을 유지한 덕인지 쭈타누깐은 결국 연장 네 번째 홀인 18번 홀에서 감격스러운 메이저 2승째를 따냈다.
투어 최고의 장타자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새가슴'이라는 오명도 함께 있던 쭈타누깐은 투어 통산 연장전 성적도 3승 2패를 기록했다. 2015, 2016년에 1패씩 당한 뒤에 최근 연장전 3연승을 거뒀다.
email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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