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5천개 알록달록 그림타일로 쌓아올린 강익중 '현충정원'

입력 2018-06-04 14:47  

6만5천개 알록달록 그림타일로 쌓아올린 강익중 '현충정원'
현충일 앞두고 공공미술 작품 순천만 공원서 공개
"공공미술은 명랑한 혁명…남북 잇는 '꿈의 다리' 놓고파"



(순천=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탑 혹은 비석, 그 앞에서 깃발을 치켜들거나 주먹을 쥔 채 먼 데를 바라보는 비장한 표정의 동상들. 우리를 자연히 비감에 젖게 하는 현충시설 풍경이다.
현충일을 이틀 앞둔 4일, 전남 순천시 순천만국가공원에서 공개된 '현충정원'은 우리한테 익숙한 현충시설과는 딴판이었다. 동천이 내려다보이는 봉긋한 잔디 언덕에 알록달록한 낮은 원통 기둥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기둥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서야 3천816명 망인을 기리는 검은 비석이 나타났다.
"왜 원 형태로 만들었느냐고들 많이 물어요. 원은 너와 나를, 남과 북을, 삶과 죽음을 이어줘요. 용서의 원이며, 화해의 원이죠."
'현충정원'은 설치미술가 강익중이 순천시민과 함께 만든 공공미술 작품이다. 작품 지름은 36.5m에 달한다. 365일 동안 우리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영령을 뜻한다고 했다.
기둥 바깥에는 전국에서 전해지는 아리랑 40여 곡 가사를 2천684개 유리 타일에 한 자씩 새겨 둘렀다. "아리랑은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변함없는 우리 민족의 노래이니깐요. 통일된 이후에도 같이할 수 있는 노래라는 점에서 골랐습니다."
링 내부에는 순천 지역 초등학생, 유치원생, 어르신 등 6만5천 명이 그린 그림을 가로·세로 3인치(7.6cm) 정사각형 나무판에 붙인 뒤 하나하나 벽돌처럼 촘촘히 쌓았다.
태극기며 무궁화, 위안부, 한반도 등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림과 글귀를 읽는 재미가 있다. 작가는 어느 초등학생이 썼다는 글귀 '잊지 말고 잇자'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순천 현충시설은 원래 죽도봉공원 정상에 있었지만, 접근하기 용이하지 않다 보니 점점 찾는 이들이 줄었다.
현충시설을 새로 만들자는 의견이 시에서 나왔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당시 '꿈의 다리'를 선보인 강익중 작가에게 연락이 닿았다.
"보통 현충시설이라고 하면 크게 높이 세우거나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어요. 하늘만 찌르지 말고 호국영령들이 계신 공원이 우리 곁에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연간 600만 명이 찾는다는 순천만국가공원에 '현충정원'이 들어선 이유다. 죽도봉공원에 있던 1천830개 기존 위패는 5일 일종의 세리모니를 치른 뒤 '현충정원' 내 비석 '꺼지지 않는 불꽃'에 함께 모시게 된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간 강익중은 이른바 '3인치 회화'로 유명해졌다. 학교를 오가며 주변 풍경, 일상의 단편, 영어 단어 등을 작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들을 한데 엮은 작품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작가는 특히 광화문 가림막 설치작품인 '광화문에 뜬 달'(2007), 경기도미술관 소장품 '5만의 창, 미래의 벽'(2008), 런던 템스 강에 띄운 '집으로 가는 길'(2016) 등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활발히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공공미술은 명랑한 혁명"이라면서 "일종의 문화혁명"이라고 강조했다.
통일, 남북이란 단어를 계속 꺼내던 작가의 오랜 꿈은 임진강에 '꿈의 다리'를 놓는 것이다. 남북한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 실향민들의 고향 그림이 담긴 타일 100만 장을 쌓아올린다는 구상이다.
작가는 "'꿈의 다리'가 현실화하면 그림을 통해 사람들 마음이 연결될 것"이라면서 "다리를 걸으면서 '여기를 건너 북녘땅까지 가고 싶다'고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테고, 통일도 더 빨리 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20년간 쓴 시를 모은 시화집 '달항아리'도 송송출판사를 통해 다음 달 출간한다. 책 말미에는 '통일이 되어도'라는 제목의 시가 실렸다.
"통일이 되어도 나는 울지 않을 것이다 / 임진강에 다리가 놓이고 휴전선이 박살 나도 / 나는 기뻐 뛰지 않을 것이다 / 나는 그저 죄없이 돌아가신 우리들의 어머니와 / 아버지에게 무릎 꿇고 희망뿐인 아이들을 껴안을 것이다."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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