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가정법원, 인천지법 판사회의 열어 "성역없는 수사" 결의
중견 법관들 신중 기류…서울고법 고법판사 수사 대신 '실효적 대책' 요구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이보배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검찰 수사를 통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법원에서 잇따르고 있다.
반면 중견 법관인 서울고법 고법판사들은 수사가 아닌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등 이번 사태의 처리 방향을 둘러싸고 법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서울중앙지법 단독 및 배석 판사들은 4일 오후 회의를 열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전체 판사의 11% 가량이 소속된 전국 최대 규모의 법원이다. 이 때문에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의 입장은 다른 법원에 속한 판사들의 논의 방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점쳐졌다.
서울중앙지법 배석 판사들은 회의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와 관련한 형사책임 여부를 밝히기 위해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며, 이에 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중앙지법 전체 배석 판사 128명 중 72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로 법관과 재판의 독립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점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법원행정처에 특별조사단 조사보고서에 언급된 파일의 원문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단독 판사 83명 중 50명도 이날 회의를 열어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 역시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대법원장은 향후 수사와 그 결과에 따라 개시될 수 있는 재판에 관해 엄정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가정법원 단독·배석 판사들도 이날 회의를 열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회의에는 가정법원 전체 단독·배석판사 28명 중 2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드러난 미공개 파일 원문 전부를 공개하라"고 법원행정처에 촉구했다. 아울러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도 요구했다.
인천지법도 이날 단독판사회의를 열어 수사의뢰 등 엄정 대처를 촉구했다.
이들은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드러난 모든 의혹에 대하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의뢰 등 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의정부지법 판사들도 지난 1일 전국 법원 가운데 처음으로 회의를 열어 "우리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해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에 뜻을 같이한다"고 의견을 모으고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공개했다.
젊은 법관에 속하는 단독·배석 판사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 반면 중견 법관들 사이에선 강경론에서 한 발짝 물러선 요구가 나왔다.
서울고법 고법판사들은 이날 오후 회의 끝에 "(이번 사태의)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사법행정권 남용행위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고법에서 부장판사와 함께 재판부를 구성하는 판사들을 지칭하는 고법판사는 법관 인사규칙 10조를 신설해 2010년부터 도입한 직급으로, 지방법원에서는 부장판사급에 해당하는 중견 법관이다.
서울고법 고법판사들은 이날 회의에서 현안에 관한 수사 필요성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으나 그에 대한 의결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수사를 요구한 단독·배석 판사들과 달리 재발방지책을 요구하는 선에서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중견 판사나 그 이상의 고참급 판사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수사보다는 사법부의 신뢰 회복부터 해야 한다는 신중론에 무게를 둘 것이라는 관측과 맥이 닿는다.
대표적인 중견 판사 그룹에 해당하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들은 이날 오전과 오후에 회의를 열었지만 의사 정족수 미달로 최종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5일 오전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다. 서울고법 고법판사들의 입장 표명을 계기로 수사보다는 재발방지책 수립에 무게를 싣는 의견이 법원 내 중견·고참 판사들 사이에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뒤따른다.
5일에도 법관들의 의견 표명이 잇따를 전망이다.
고위 법관에 속하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은 이날 오후 4시 회의를 열고 입장 정리에 나선다.
서울회생법원은 같은 날 오후 2시 이례적으로 법원장 주재 회의를 열고 입장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밖에 4일 회의를 마친 서울남부지법은 5일 오전 의결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서울동부지법도 8일 정오께 전체 판사회의를 열고 입장을 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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