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배석 판사회의 의결 잇따라…5일 사법발전위 참석해 의견청취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해야 한다는 일선 판사들의 요구가 조직적 양상을 띠고 분출되면서 이번 파문의 후속 대책을 찾아야 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은 4일 판사회의를 열고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재판 독립과 법관 독립에 대한 국민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중앙지법 전체 단독 판사 83명 중 50명이 참석해 채택한 입장이다.
이날 서울가정법원 단독·배석 판사들도 판사회의를 열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회의에는 가정법원 전체 단독·배석판사 28명 중 20명이 참석했다.
인천지법도 이날 단독판사 회의를 열어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드러난 모든 의혹에 대하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의뢰 등 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한다"고 의결했다.
지난 1일에는 의정부지법 판사들이 전국 법원 가운데 처음으로 회의를 열어 "우리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해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에 뜻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다른 법원에서도 속속 판사회의 등을 열어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다.
이런 흐름은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의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이 지난달 25일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드러난 직후 분위기와 비교할 때 한층 차원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사결과 발표 직후에도 법원행정처의 사찰 대상자로 지목됐던 법관이나 일부 소장파 판사들이 법원 내부게시판이나 개인 SNS를 통해 '수사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일선 법원의 법관들이 단체 명의로 채택한 수사 요구는 훨씬 규모가 크고 조직화한 목소리여서 김 대법원장이 판사 개인 의견보다 훨씬 무겁게 받아들일 공산이 커 보인다.
이같이 일선 법관들의 조직화한 수사 요구가 분출한 데에는 재판거래 의혹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사법부 내부 수습책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젊은 법관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번 파문과 관련해 재판거래 및 판사 사찰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일선 법관들이 강경한 태도로 돌아서는 데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반면 이처럼 법원 내에서 조직화한 목소리가 나오더라도 사법부 내부의 의견이 균형 있게 반영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미 특별조사단이 조사를 마무리한 상황에서 검찰까지 이번 의혹을 수사하는 건 의혹 실체 규명이라는 득(得)보다 사법불신만 더 부추겨 실(失)이 더 많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고참 법관들 사이에서는 많기 때문이다.
실제 중견·고위 법관들이 의견을 표명하는 자리가 속속 열린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들은 이날 오전 판사회의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정하지 못해 오후에 다시 회의를 열고 최종 입장을 정리한다.
서울고법 소속 판사들도 조만간 판사회의를 열고 입장정리에 나설 방침이다.
이 외에 서울회생법원은 5일 오후 2시 법원장 주재 회의를 열고 입장을 논의하기로 했다. 또 서울동부지법도 이번 주 내로 전체 판사회의를 열고 입장을 정할 예정이다.
법원 내부의 조직적인 의견 표출이 어떤 결론에 이를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날 단독·배석 판사들의 잇단 입장 채택은 김 대법원장에게 상당한 고민을 안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5일부터 줄줄이 예정된 법원 내 주요 자문기구의 논의내용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들 자문기구들이 판사회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면 김 대법원장으로서는 부담을 덜고 검찰 고발 카드를 선택할 수 있겠지만, 자문기구들이 판사회의와 결이 다른 결론을 낼 경우 김 대법원장의 고심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김 대법원장은 우선 5일 열리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에 앞서 위원들과 긴급 간담회를 하고 재판거래 의혹 사태에 대한 위원별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당초 김 대법원장은 사법발전위원회가 자체 의결한 내용을 회의 이후 전달받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직접 회의에 참석해 위원들의 생생한 의견을 직접 청취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 안팎 인사들이 고루 참여한 사법발전위원회 구성에 비춰 다양한 의견이 혼재할 가능성이 크고, 다수결로 정해진 의견만 듣기보다는 직접 개별적인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법원장은 7일에는 전국 법원장들이 참여하는 '전국법원장간담회'에 참석해 의견을 듣는다. 이 회의에서는 일선 판사들과 달리 법원장들이 빠른 사태수습을 위해서는 검찰 수사보다는 법원의 자체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일 것으로 전망된다.
11일에는 각급 법원 대표판사들이 참여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태에 대한 입장을 의결해 발표한다.
일선 판사들을 대표하는 대의기구 형태의 회의체이기 때문에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각급 법원 판사회의와 마찬가지로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결론이 도출될 것이라는 예상이 현재로서는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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