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속 빈곤에 빠진 한국 드라마

입력 2018-06-05 06:02  

풍요 속 빈곤에 빠진 한국 드라마
평일 두 자릿수 시청률 사라져…자본력 따라 부익부 빈익빈
한한령 완화 앞두고 콘텐츠 경쟁력 약화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호황인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불황인 적이 없었다.
한 주에도 신작 드라마가 몇 개씩 전파를 타고, 한 해에 100편이 넘게 제작된다지만 '눈이 번쩍'할 만한 작품은 없다. 그러는 사이 시청률 두 자릿수는 케이블뿐만 아니라 지상파에조차 '거대한 벽'이 돼버렸다.



◇ 평일극, 시청률 두 자릿수 사라지다
KBS 2TV 월화극 '우리가 만난 기적'이 종영하면서 채널과 관계없이 평일 미니시리즈에서 두 자릿수 시청률을 볼 수 없게 됐다. '우리가 만난 기적' 역시 닐슨코리아 기준으로 10%를 힘겹게 넘은 수준이었다.
시청률이 1%대까지 떨어졌던 MBC TV가 최근 '검법남녀'와 '이리와 안아줘'를 통해 분위기 반등을 꾀하고 있고,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안정적인 성적을 보인 SBS TV는 '기름진 멜로'와 '훈남정음'이 부진에 빠지는 등 크고 작은 등락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다 같이 침체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지상파로서는 tvN 등 케이블이나 JTBC 등 종합편성채널들과 시청률 차이가 별반 없어진 셈이 돼 부족한 자본과 치열해진 경쟁, 이중고에 빠진 셈이 됐다.



물론 비지상파 채널들도 근근이 화제성 높은 작품들이 스쳐 가기는 했으나 지난해 초 시청률 20%를 넘기며 케이블 채널 역사를 새로 쓴 tvN '도깨비' 이후로 이렇다 할 대작은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반적인 하향 평준화 속에서도 드라마 편수는 자꾸 늘어만 간다. 지상파는 기본이고 tvN과 OCN 등 CJ E&M 역시 공격적으로 드라마 편성을 늘리고, TV조선 주말극 '대군'이 시청률 5%를 넘기며 선방하면서 종합편성채널들도 다시 하나둘씩 드라마 시장에 뛰어든다.
여기에 넷플릭스 등까지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면서 앞으로 작품 수는 더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양적으로만 팽창하는 이 무한경쟁의 궤도 속에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도사린다는 점이다.



◇ 높아져만 가는 제작비…출혈경쟁 속 부익부 빈익빈
'방송은 돈'이라는 공식은 드라마에 대표적으로 적용된다. 높아지는 스타 몸값에, 제작자들의 주 52시간 근로제까지 제작비가 날로 증가하면서 드라마 제작도 갈수록 자본력의 싸움이 되고 있다.
특히 지상파들은 상대적으로 과감한 투자가 어려운 가운데 너도나도 앓는 소리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 고위 관계자는 5일 "예를 들어 우리 기준에서 드라마 단가의 최대치가 편당 4억원이라면 실제로 드는 비용은 5억~6억원 정도가 돼버렸다. 배우 개런티도 수천만원 올랐고, 제작 비용도 급상승했는데 광고는 다른 채널에 쏠리니 갈수록 우리 자본력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오는 7월 첫 방송 예정으로 스타작가 김은숙이 집필해 올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미스터 션샤인'이 수백억원 제작비 규모를 자랑하는 것과는 비교된다.



수년 간 경험을 쌓은 작가 등이 수십 명씩 케이블이나 종편으로 유출되는 현상 역시 지상파로서는 뼈아픈 부분이다. SBS가 최근 신인 작가 등을 키우는 '스튜디오' 설립을 진중하게 기획하는 것도 이러한 고민의 발로다.
MBC는 아예 제작비는 제작사가 모두 부담하도록 하고, 방영권만 가져오는 방식으로 '리스크 관리'를 한다. 지상파가 행사해온 IP(지식재산권)를 내려놓되 제작비에 대한 부담을 줄인 셈이다.
이렇듯 각자 고육지책으로 여러 대안을 내놓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본의 힘에 따라 양질의 재원이 모두 흘러가는 현상이 조만간 한순간 작품 수 급감을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지상파에 드라마 존재 가치는 '시청률 견인'과 '광고 수익 창출'인데, 두 가지 가치가 모두 저하하면 결국 '다이어트'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며 "드라마를 아예 없애진 못하겠지만 블록이 많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 글로벌 시장 속 부실 콘텐츠 우려도
이러한 '선택과 집중'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세밀한 전략하에 이뤄진다면 반길 일이지만, 내몰릴 데까지 내몰려서 할 수 없이 하는 게 되면 결국 콘텐츠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달 12일부터 중국에서 열리는 현지 최대 방송 콘텐츠 시장에서 2년 만에 한국관이 재등장할 것으로 알려져 본격적인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완화가 기대되는 가운데 자신 있게 내세울 콘텐츠가 줄어드는 데 대한 우려도 있다.



장기적으로 방송국들이 국내 드라마 제작 대신 외화 방영을 늘리는 일본이나 대만의 전철을 밟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 방송국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제작비가 올라가다가 선이 넘으면 일본이나 대만처럼 내부적으로 제작은 확 줄이고 다른 나라 작품을 사다가 트는 현상까지 갈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외국 업체들까지 국내 드라마 제작에 속속 뛰어드는 가운데 정부가 나서서 한 차례 토종 산업에 대해 정비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지상파 드라마국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각종 방송 규제를 풀 건 풀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해 글로벌 경쟁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is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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