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로 '디비졌다'는 경남… 격차 벌리기냐 막판 역전이냐

입력 2018-06-06 05:00   수정 2018-06-06 10:59

[르포] 서로 '디비졌다'는 경남… 격차 벌리기냐 막판 역전이냐

김경수는 '여당'·김태호는 '인물' 어필 주력… 지지 세대차 뚜렷




(밀양·함안·진주=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디비졌다!'
경남지사 자리를 놓고 맞붙은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와 자유한국당 김태호 후보의 5일 유세를 차례로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현지 사투리로 '뒤집어졌다'는 뜻이다.
물론 무엇이 뒤집어졌는지, 두 캠프의 주어는 달랐다.
먼저 김경수 후보는 옛 밀양관아 앞 삼거리 유세에서 "제가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만날 두들겨 맞고 있는데 그래도 지지도가 더 올랐다"며 "먹고 살기 힘들면 바꾸는 게 선거 아니겠나. 함 디비볼까요"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런 발언의 행간에는 시쳇말로 '보수 후보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던' PK(부산·경남)가 변해 이제는 민주당이 광역단체장뿐 아니라 기초단체장 당선도 한번 노려볼만 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전과 다른 기류는 달뜬 주민들과의 대화에서도 감지됐다.
밀양 아리랑 시장에서 수산물을 파는 50대 여성은 "60대 위로는 아직 한국당 골수인데, 40~50대는 반반이고, 애들은 더불어(민주당)"라며 "홍준표 막말에 돌아선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옷감 상점 주인도 "여기서 진보는 발도 못 대고 입도 못 뗐는데 정말 많이 변했다. 촌은 보수지만, 면 사람들 다 합해봐야 삼문동 아파트 큰 단지 하나밖에 안될 것"이라며 김경수 후보의 당선을 점쳤다.
반면 김태호 후보는 김경수 후보가 손쉽게 승기를 잡을 것으로 관측되던 경남 판세가 뒤늦게 요동치고 있다는 의미로 디비졌다는 말을 썼다.
함안 5일장에서 만난 그는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사죄하고, 한 번만 더 선택해달라고 경남을 땀으로 적시면서 오갔더니 마음을 열어주시더라"며 "요즘 하루하루 차이가 느껴져 놀란다"고 말했다.



이른바 '샤이 보수' 때문인지 조사 방식 때문인지 모르지만, 김경수 후보의 지지율이 20%포인트 이상 높다는 최근 일부 여론조사 결과는 바닥 민심과 간극이 크다고 김태호 후보 측은 보고 있다.
함양이 고향이라는 65세 상인 이도원 씨는 "김태호를 거창군수 시절부터 잘 아는데, 좋은 사람"이라며 "경남은 김태호다. 여론조사는 안 믿는다"고 잘라 말했다.캠프 관계자는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패배자는 여론조사기관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며 "오늘 유세한 함안뿐 아니라 경남 전체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두 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자신이 도탄에 빠진 경남 민생을 구할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김경수 후보는 '여당의 힘 있는 도지사'를, 김태호 후보는 '경남을 더 잘 아는 도지사'를 각각 내세웠다.
도민을 직접 만나는 자리에선 각자의 '필살기'로 승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경수 후보는 "실물이 더 안 낫습니까. 일또 잘합니더"라고 다가갔다. 그러면서 조성환 밀양시장 후보를 옆에 세우고 "우리 밀양 잘 살고로, 쎄뜨로 한번 밀어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오전 일찍 빗속 유세를 마치고도 방금 세수한 듯 말끔한 얼굴을 하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시장을 돌아다니자 상인들 사이에서 "인간성 좋고 반듯하고 점잖네"라는 평가가 나왔다.
김태호 후보는 "어머님 태호 왔습니다"라고 손을 잡으며 눈을 찡긋했다. 그러면 주변에선 선거운동원들이 "인물 좋은 김태홉니다"라고 시끌벅적하게 추임새를 넣었다.
'선거의 달인'이라는 세간의 평을 입증하듯 그는 상인들이 건네는 떡과 식혜를 다 받아먹고, 진땀을 흘리면서 두 손으로 무릎을 짚어야 할 정도로 90도 인사를 해 박수를 받았다.



이처럼 스타일이 다른 두 후보에게 맞수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칼을 품은 칭찬을 내놨다.
김경수 후보는 김태호 후보에 대해 "겸손하고 스킨십이 뛰어나 제가 2012년 선거 때 힘들었다"면서 "그러나 이번 선거는 김태호와 김경수만의 경쟁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대결"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호 후보는 김경수 후보에 대해 "예전이나 지금이나 겸손하고 스마트한 친구"라면서도 "안타까운 일로 신뢰도가 깨진 것 같다"며 '드루킹 사건'(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이날 취재를 위해 낙동강과 남강을 두 번씩 건너며 300㎞ 가까운 거리를 달렸지만, 광활한 경남 판세를 하루 만에 가늠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다만, 여러 도민들에게 묻고 들으면서 서부·동부 경남이라는 지역차보다는 세대차가 더 클 수 있겠다는 힌트를 얻었다. 개중 서로를 찌르는 듯한 독설 한쌍을 소개하면 이런 식이다.
함안에서 작은 제과점을 운영하는 60대 여성은 "김경수는 드루킹 특검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니냐"며 "어차피 재보궐 선거를 할 바에야 세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진주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경상대 학생은 "김태호 인물이 좋다고들 하지만 한국당 소속"이라며 "이명박, 박근혜, 홍준표를 보고도 한국당 후보를 뽑자는 사람이 있으니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경남에는 우산을 쓰기도 접기도 애매한 가랑비가 종일 내렸다. 초여름 더위가 잠깐 식자 선거운동원들은 "유세하기 좋은 날"이라며 더 열을 올렸다. 그들의 목청 때문이라도, 경남은 어쨌든 디비지고 있는 듯했다.



hanj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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