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순화뿐 아니라 내용에도 신경 써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창건 후 1750년(영조 26)과 1821년(순조 21)에 각각 중수돼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건물의 크기는 190㎡로서 목조와가이며 원형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문화재청이 지난 4일 보물로 지정한 강원도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이 강원도 유형문화재일 당시 작성된 안내판 일부다. 나무로 지은 기와집을 뜻하는 '목조와가'(木造瓦家)라는 용어를 제외하면 어렵지는 않지만, 문체가 딱딱하고 건조한 느낌을 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공공언어 개선 추진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서울시 유형문화재 '침류각'을 예로 들어 안내문이 너무 어렵다고 꼬집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화재 안내판에 불똥이 떨어졌다.
문화재 안내판은 그동안 내용이 난해하고 친절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화재가 워낙 전문적 영역이기는 하나,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문화재청은 2016년 국립국어원과 함께 안내문을 작성할 때 지켜야 할 기본 원칙과 안내문에 담아야 할 사항을 정리한 지침서를 발간하고, 지정문화재 명칭을 '경주 교동 최씨 고택'에서 '경주 최부자댁'으로 바꾸는 등 문화재 용어 순화를 위해 노력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안내판을 초등학교 고학년생 수준에 맞춰 국민이 알기 쉽고 알고 싶게 만드는 방안을 수립하고자 한다"며 "대학교수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이 참가하는 자문단을 꾸리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재 전문가들은 단순한 용어 풀이만으로는 안내판 수준을 높일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용어를 쉽게 쓰려는 시도는 물론 글에 어떤 내용을 담을까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 관계자는 "오래된 건축물을 설명한 안내판이 특히 어려운데, 무작정 용어를 풀어서 쓸 수도 없다"며 "맞배지붕, 공포, 서까래 같은 용어는 관람자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쉬운 말로 바꿀 수 없다면 안내판에 그림을 그리면 된다"며 "건축물이나 석탑 도면을 넣고 각 부위를 지칭하는 용어를 써넣으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물건 중심이 아니라 문화재를 만든 사람 중심으로 글을 써야 한다"며 "건축물 구조보다는 건물 명칭에 숨은 뜻이 무엇이고, 누가 지어서 사용했는지를 알려줘야 흥미를 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위원인 안창모 경기대 교수도 "문화재 안내판을 쉽게 써야 한다는 데에는 충분히 공감한다"며 "한정된 공간에 글을 모두 담을 수 없다면 QR코드 같은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문화재 안내판처럼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와 높임말을 쓰면 독자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울러 천편일률적인 디자인과 관람을 방해하는 위치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동산문화재나 천연기념물을 제외해도 문화재 안내판이 1만 개 정도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장기적으로는 문화재별 특성을 살린 안내판을 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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