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D-5] ⑬북한, 왜 체제보장에 집착하나

입력 2018-06-07 06:20   수정 2018-06-07 09:23

[북미회담 D-5] ⑬북한, 왜 체제보장에 집착하나
北, 리비아·이라크 정권 붕괴 교훈…'미국 못 믿는다'
北, 한미군사훈련이 언제든 '북침전쟁' 돌변 불안감 가져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우리는 리비아나 이라크가 아니다."
'세기의 핵담판'을 준비하는 내내 북한이 외친 건 리비아나 이라크처럼 무너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선(先)핵폐기-후(後)보상'의 리비아모델 수용 압박에 반발하며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는 것도 카다피 정권이 핵을 먼저 내놓은 탓에 처참히 몰락했다는 믿음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 고위당국자들이 달콤한 '경제적 번영'을 약속해도 요지부동이다. 어떻게 미국의 말만 믿고 핵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달 16일 "미국이 우리가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 보상과 혜택을 주겠다고 떠들고 있는데…"라며 '미국의 적대 정책과 핵 위협 공갈을 끝장내는 것'이 비핵화 '선결조건'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북한의 핵을 폐기하고 싶으면 안전보장 조치부터 확실히 마련하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도 같은 달 24일 "리비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믿음직한 힘을 키웠다"며 안전보장 우선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북한이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요구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안전보장'(CVIG)으로 맞서는 것도 안전보장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카다피나 대미 경각심을 늦추고 일방적 요구를 받아들였다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는 게 북한 지도부의 인식이어서 핵을 내놓겠지만 대신 안전하다고 믿을 담보를 동시에 받아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이처럼 안전보장에 집착하는 것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의 침공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70년 전 미국과 직접 6·25전쟁을 치른 국가여서 전쟁에 대한 공포가 항시적으로 존재한다.
김일성 주석은 1986년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에서 "남한에 있는 미군 핵무기 1천 개 가운데 2개만으로도 북한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보인 것으로, 우드로 윌슨센터 냉전국제사프로젝트(CWIHP)가 2005년 수집 발표한 옛 소련과 동독 등 동유럽에서 비밀해제된 각종 외교문서에서 나타났다.
CWIHP의 한반도 냉전사 책임자인 캐스린 웨더스비 연구원 등은 "당시부터 미국의 대북 공격에 대한 두려움과 후견국이라는 소련과 중국도 믿을 수 없다는 고립감"을 북한의 독자적인 핵무장의 배경으로 지목했다.
전쟁에 대한 공포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급속히 확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정권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도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카드를 꺼내면서 실제 한반도에는 전쟁 위기가 감돌았다. 북한의 두려움을 키운 동시에 협상의 마당으로 끌어낸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1차 정상회담에서 무력 불사용과 불가침 입장을 확인하면서 "(무력 사용은)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것 아니냐"고 말한 데서도 전쟁이 정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읽힌다.
올해 초까지 해도 미국 본토에 대한 핵 공격을 운운하며 선제공격 불사까지 외쳤던 김 위원장의 호언이 '두려움을 장착한 허장성세'였음을 보여준다.
다른 고위층 탈북자는 "전쟁에 대한 공포는 서민들이 아니라 세상 물정을 어느 정도 아는 기득권과 모든 것을 가진 최고지도부에서 더욱 심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한미군사연습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역시 단순한 훈련으로 끝나지 않고 언제 어떻게 '북침전쟁'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불안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북침핵전쟁연습반대 전민족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작년 8월 담화에서 '을지 프리덤 가디언' 한미군사연습을 비난하며 "미국 전쟁 괴수들의 지휘 밑에 광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불장난 소동이 실전으로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역설했다.
북한이 올해 맥스선더 한미연합훈련에 강력히 반발한 것도 일반적인 군사훈련의 차원을 넘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북한 매체들은 "맥스선더 훈련에 참가한 F-22는 레이다에 잘 걸리지 않으면서도 목표를 정밀타격할 수 있는 스텔스 전투기이며 B-52는 수많은 폭탄을 적재하고 장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핵전략 폭격기"라며 불안을 드러냈다.
한 대북소식통은 "김정은 집권 이후 전방 군인들에게 전달된 규칙 중 하나는 상부의 승인 없이 절대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전방의 우발적 사고 등이 자칫 전면전까지 이어질 수 있는 걱정 때문"이라고 전했다.
chs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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