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교육부가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됐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업과 관련해 당시 청와대와 교육부 관계자 등 17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고, 6명의 교육 공무원은 인사혁신처에 징계를 요구하는 선에서 진상조사 처리를 마무리했다. 수사 의뢰 대상에는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국정교과서 홍보업체 관계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정화를 실제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서남수·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 등 핵심 인사들이 대상에서 빠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조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가 전 정부의 국정화 추진과정에서 적지 않은 위법·부당 행위가 있었다며 지난 3월 교육부에 박 전 대통령 등 25명을 수사 의뢰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교육부는 수사권이 없어 외부 인사의 위법 행위를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해 관련자들을 수사 의뢰했다는 입장이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 때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업의 기획과 실행에 가담한 고위 공직자들의 직권남용·업무상 배임·강요 등 구체적 위법 행위 여부는 검찰 수사로 가려지게 됐다. 수사 상황에 따라 의뢰 대상에서 빠진 박 전 대통령 등의 법적 책임 여부도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진상조사 백서를 공개한 뒤, 이를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배포할 계획도 밝혔다. 지난 정부가 비정상적으로 추진하다 실패한 역사 교육 정책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후대 정부가 교훈으로 삼아 유사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교육부는 진상조사위가 재발방지 대책으로 권고한 '역사 교육 공론화', '역사교과서 자유발행제 확대' 등을 최대한 수용해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역사 교육 공론화를 주관할 기구로 역사교육위원회를 설치해 이곳에서 역사 교육의 가치와 지향점, 개별 주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토록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장관의 교과서 발행제도 결정 권한 또한 수정해 역사교과서 인정제와 자유발행제를 늘리기로 했다. 이는 다양한 유형의 역사교과서 연구와 개발을 독려하려는 정부의 뜻으로 해석된다. 제대로 실행만 된다면 역사 교육의 전환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정부가 특정 이념을 앞세워 역사교과서를 개편할 경우 큰 사회적 논란이 발생했고, 오래가지도 못했다는 점을 잘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기존 검정 역사교과서의 좌 편향성을 바로잡는다며 비민주적 방법으로 국정화를 추진하다 탄핵 사태가 겹치면서 스스로 포기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보수적 역사관이 담긴 국정 한국사 교과서를 진보적 역사관을 담을 검정체제로 전환했지만, 후임 이명박 정부가 새 집필 기준을 만들어 내용을 바꾸면서 지속하지 못했다. 현 정부에서도 논란은 있다. 2020년부터 사용할 중·고교생용 새 역사교과서 제작 때 적용할 '교육과정 및 집필 시안'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란 표현이 빠진 것을 놓고 보수·진보 진영 간 공방이 이는 것이 한 사례다. 5년마다 바뀌는 정부가 충분한 국민적 공감 없이 역사교과서를 바꾸려 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은 역사적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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