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공동선언 기념행사에 남북한 대사 나란히 참석
북 청소년 중창단 '깜짝공연'…정범구 "베를린서 심정적 통일된듯"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베를린에서는 심정적으로 통일이 이뤄진 것 같습니다."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가 이같이 축사를 시작하자 박남영 주독 북한대사는 크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9일(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18주년 기념 및 판문점 선언 축하 행사에서 남북이 한데 어우러졌다.
남측 단체인 6·15 공동선언실천 유럽지역위원회 주최로 열린 행사에 박 대사 등 북측 인사들이 참석한 것이다.
행사장인 베를린 기독교 한인교회에 도착한 박 대사의 얼굴에는 다소 긴장감이 흘렀다. 박 대사가 부임 후 남측 행사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문 앞에서 기다리던 정 대사 및 남측 교민들과 악수를 하면서 이내 미소를 띠며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박 대사는 방명록에 '민족 공동의 번영과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하여 헌신하자'고 정성을 들여 적었다.
6·15 공동선언과 판문점 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 간 관계를 보여주는 영상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만나 악수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정 대사와 박 대사는 박수를 치면서 서로 마주 보았다.
행사에서는 남측 청소년들의 공연에 이어 예고 없이 북측 청소년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 200여 명의 참석자를 놀라게 했다.
박 대사는 곧바로 무대 위로 나아가 이들을 소개하면서 "가정에서, 길가에서 부르던 노래를 부를 것"이라며 박수를 부탁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북측 청소년 다섯 명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백두와 한나는 내조국'을 불렀다.
'백두와 한나는 내조국'을 부르던 중 통일을 염원하는 가사 대목에서 북측 청소년들은 울먹이기도 했다.
이들은 앙코르 요청을 받고선 우리나라에서 많이 알려진 북한 가요 '반갑습니다'를 부르자 교회 안에선 환호성이 쏟아졌다.
북측이 문화공연까지 참여해 한반도에서 6·15 남북공동행사가 무산된 것과 달리 베를린에서는 사실상 남북이 공동행사를 열게 된 셈이다.
정 대사는 공연 뒤 축사에서 "박 대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비장의 무기까지 꺼내놓으셨다"고 화답했다.
정 대사는 "어렵게 이어진 끈을 다시는 놓치지 말고 더 튼튼한 동아줄로 만들어야 한다"라며 "형제간의 오랜 반목을 청산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시키고 공동번영으로 나아간다면 어떤 나라도 우리 민족을 함부로 보지 못할 것으로, 그러면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등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피오리 볼로냐대학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문샤인 폴리시'라고 했다"라며 "컴컴한 밤에 달빛에 의지해 험한 준령도 넘고 강도 넘고 끝내는 목적지까지 도달하게 하는 게 달빛"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사는 축사에서 "민족분열은 전쟁의 참혹함과 재난밖에 없다는 뼈저린 교훈을 새겨줬다"면서 " 내외 반통일 세력 도전이 아무리 악랄하고 주변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우리 민족끼리 뜻과 힘을 합치면 북남 관계 개선과 조선반도의 평화번영을 위한 길을 힘있게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자리를 함께한 이웃 동포 여러분들이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민족자주와 애국애족의 마음을 갖고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자고 열렬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박 대사는 행사장에서 유명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교민들이 박 대사와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 한동안 행사장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행사에 참석한 박명림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장은 "남북대사가 나란히 참석해 사실상 남북공동행사로 치러졌다"면서 "아직 북한이 조심스럽겠지만, 이렇게 공개행사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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