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서촌지기' 궁중족발 사장 구속…"제도적 비극" 목소리도

입력 2018-06-10 17:06  

'20년 서촌지기' 궁중족발 사장 구속…"제도적 비극" 목소리도
보증금·임대료 4배 인상 요구한 건물주에 둔기 폭행
정의당 "폭행 정당화 못하지만 제도 불합리"…시민단체 "임차인 보호 강화해야"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건물주에게 둔기를 휘둘러 살인미수 등 혐의로 구속된 서촌 '본가궁중족발' 사장 김모(54)씨는 서촌 일대가 오랜 삶의 터전이었다.
10일 김씨 주변인들에 따르면 그가 금천교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은 약 20년 전이다. 김씨는 분식집과 실내포장마차를 하며 조금씩 저축한 돈에 대출금을 더해서 2009년에 본가궁중족발을 차렸다. 궁중족발은 인근에 소문난 맛집이 됐다.
2013년에는 자비 3천500만원을 들여 가게 전체를 리모델링했다. 김씨는 서촌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서촌이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2015년 건물주는 월세를 263만원에서 297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다. 김씨는 큰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2016년 1월 건물주가 바뀌면서 김씨가 맞닥뜨린 상황은 달라졌다. 새 건물주 이모(60)씨는 돌연 월세를 4배가 넘는 1천2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3천만원이었던 보증금은 1억원을 요구했다.
김씨가 항의했지만 이씨는 "싫으면 나가라"고 했다고 김씨 주변인들은 전했다. 실제로 이씨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도 "월세를 올려 받을 생각이 없었다. 나가라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씨가 48억여원에 건물을 매입했고, 궁중족발을 정리한 후에는 70억원가량에 건물을 되팔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씨가 여러 건물을 반복적으로 매매하면서 시세차익을 거두며 큰돈을 만지는 사람이라는 풍문도 들려 왔다.
김씨는 법에 기댈 수도 없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지만, 최초 임대차 계약으로부터 5년까지만 이 같은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한다.
김씨는 궁중족발을 차린 지 이미 7년이 넘은 상태였다. 계약갱신 요구권을 보장하는 기간을 10년으로 늘려달라는 중소상인·자영업자들의 오랜 요구는 법개정안 발의가 돼 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었다.


명도소송에 패한 김씨는 법 집행에 불복하고 가게를 강제 점유하고 나섰다. 임차인 시민단체인 '맘상모'(마음 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들의 모임)가 김씨를 도왔다. 지난해 11월 2차 강제집행 때 손을 심하게 다치기도 했던 김씨는 이달 4일 12번째 강제집행까지 물리력으로 제지했다.
이씨의 건물 매입 후 2년 6개월에 걸친 궁중족발 사태는 지난 7일 끝내 파국으로 흘렀다. 김씨는 이씨를 찾아가 차로 들이받으려 시도하고, 망치를 휘둘러 이씨를 크게 다치게 했다. 김씨는 9일 살인미수 등 혐의로 구속됐다.
정의당 중소상공인자영업자위원회는 논평을 내고 "폭행 자체를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이 사건의 배경에는 임차상인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불합리한 법과 제도가 놓여있다. 우리 사회의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제2, 제3의 궁중족발이 도처에 있다"고 말한다. 맘상모는 이화여대 인근의 한 조개구이집의 경우, 최근 건물 지분 82%를 경매로 취득한 건물주가 기존 건물주와 소유권 분쟁 중인데도 용역을 동원해 강제집행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단체 빈곤사회연대는 성명을 내고 "(궁중족발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의 결과"라면서 "기간 제한 없는 임대료상한제 및 계약갱신권이 세입자에게 주어져야 하며, 폭력적인 강제퇴거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hy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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