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이어 싱가포르서 트럼프-김정은 결단 앞선 '파이널 터치'까지
(싱가포르=연합뉴스) 특별취재단 = '세기의 외교 이벤트'인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리인' 역할을 맡은 성 김(58)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와 최선희(54) 북한 외무성 부상은 마라톤 협의를 벌였다.
두 정상이 각자 일정을 소화해가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전을 위해 '열공'하는 동안 성 김 대사와 최선희 부상은 수십명의 취재진이 진을 친 싱가포르 리츠칼튼 호텔에서 막판 합의문 초안 작업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지난달 27일 시작한 판문점 의제 협의를 싱가포르로 옮겨 진행한 것이었다. 통상 정상회담 전 합의문 최종 조율은 양국 외교장관 또는 국가안보보좌관(한국의 경우 안보실장) 몫이지만, 여러 면에서 특별한 이번 회담은 '고위 실무자급'인 김 대사와 최 부상이 막판까지 합의문 조율 작업을 맡는 이례적 양상이었다.
양국 외교수장인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과 리용호 외무상 등이 전날 싱가포르 현지에 입성했지만 김 대사와 최 부상이 계속 협의를 이어간 것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놓고 정무적 판단과 정치력보다는 두 사람이 지닌 핵 문제 관련 전문성을 바탕으로 꼼꼼한 협의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오랜 기간 북핵 문제에 천착해온 둘은 이날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 30분 등 협의를 진행했고, 협의 사이에 식사를 위한 휴식시간을 가지며 협의 내용에 대한 상부 보고 및 동의 과정을 거치는 모습이었다.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이번 정상회담의 무게를 의식한 듯 김 대사와 최 부상은 회담 장소인 리츠칼튼 호텔 입구를 오갈 때마다 진을 친 수십 명의 취재진 질문을 철저히 외면해가며 발걸음을 바쁘게 옮겼다.
김 대사와 최 부상은 양국 현역 외교관 중 손에 꽂히는 북핵 협상 전문가라는데 이견을 다는 이들이 많지 않아 보인다. 김 대사는 국무부 북핵 6자회담 특사와 주한 대사를 거쳐 오바마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역임했다.
외교관 인생의 상당 부분을 북핵과 씨름했던 그는 북핵과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는 필리핀 주재 대사를 맡다 북미정상회담이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국면 전개 속에 '구원투수'로 부름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종 비판한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북핵을 다룬 인물이지만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전개된 우여곡절 속에 트럼프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북핵 협상 무대로 돌아왔다.
최 부상은 북핵 6자회담때 대표단 통역을 맡은 데 이어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 6자회담 차석대표, 북아메리카국 국장 등을 거치며 대미 핵 협상에서 전문성을 쌓아 나갔다. 그리고 지난 3월 부상(차관)으로 승진하자마자 자국 역사상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회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잘하면 자국 외교사에 남을 '영웅', 못하면 '역적'이 될 수 있는 협상에서 두 협상가는 자신의 외교관 경력을 건, 물러설 수 없는 담판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아산정책연구원 신범철 안보통일센터장은 11일 "비핵화 관련 내용을 합의문에 어떻게 풀어쓸지, 다음 단계의 행동적 조치들을 얼마나 담을지 등을 계속 토의해 정상회담서 최종 결단을 끌어내는 과정"이라며 "정상들에게 옵션을 폭넓게 제공하는 점에서 그간의 대화 수준을 고려할 때 김 대사와 최 부상이 오늘까지 협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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